♣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6 용파도주(龍波道周)

浮萍草 2015. 10. 6. 12:44
    영남에 호암문중 뿌리 내리다
    運還像季 正法難救 돌아온 말법 시대에 정법 만나기 어렵다. 오직 스님은 뜻대로 혜명을 얻어 惟師任之 慧命是佑 뗏목을 빌린 교해 동쪽을 밝힌 선원 借筏敎海 東燭襌園 종사가 설법한 등단 문하생이 가득한 문하 宗說登壇 桃李滿門 환성의 법손이요 호암의 법자이니 喚惺之孫 虎巖之子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不像者存 何生何死 어찌 나고 죽겠는가.” 어사 소장 용파도주(龍波道周, 1755~1775 활동)선사 진영에 실린 구봉지화(九鳳知和, 1857~1872 활동)스님의 영찬이다. 구봉스님은 용파스님의 6세손이다. 영찬의 구절대로 용파스님은 환성지안과 호암체정의 법맥을 계승했다. 조선후기 호암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호남과 영남 불교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제자들 중 만화원오, 연담유일이 호남에서 문중의 명성을 높였다면 용파스님은 영남에서 문중의 입지를 굳건하게 했다. “뗏목을 빌린 교해(敎海), 동쪽을 밝힌 선원(禪園),종사가 설법한 등단,문하생 가득하네”라는 구봉스님의 찬탄처럼 영남에서 호암문중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용파스님의 공덕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18세기 중엽 통도사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사에 동참하면서 1768년에 통도사 극락암 중수를 이끌었다. 중수된 암자에는 스승인 호암스님 진영이 모셔졌고 이는 문중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용파스님이 입적하자 그의 문도는 승탑과 탑비를 통도사에 세우고 진영을 제작해 호암스님 진영과 함께 봉안했다. 통도사 호암문도는 극락암에 모신 두 스님의 진영이 오래되자 1859년에 환성문중 출신 화승 의운자우(義雲慈友)스님을 청해 진영을 새로 조성했다. 범어사 용파스님 진영은 1859년에 제작된 통도사 진영을 모본으로 한다. 진영 속 스님은 타원형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불자(拂子)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이같은 용파스님의 모습은 호암스님 진영을 겹쳐 그린 듯 흡사하다. 실제로 두 스님이 서로 닮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후손들은 진영을 예경하며 호암스님의 요체(要諦)가 용파스님에게 전수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불교신문 Vol 3094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