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 화악지탁(華嶽知濯)

浮萍草 2015. 10. 3. 00:00
    자비심 넘치는 화엄종주
    冥心法界 傍通九流 마음법계를 맑히고 구류와 소통하나 謙謙自卑 萬德攸依 스스로의 겸손함으로 만덕을 베풀고 七坐道場 兩奉聖旨 일곱 번 주지를 하고 두 번 성지를 받으니 佛幡登空 法住般若 불당이 허공에 드날리고 법 그대로 지혜로우시네. 월혜소(寶月慧昭)스님이 옹사(翁師) 화악지탁(華嶽知濯,1750~ 1839) 선사 진영에 올린 찬문이다. 혜소스님은 손상좌 고경(古鏡)과 함께 1869년에 화악스님의 시문을 모아 <삼봉집(三峰集)>을 간행했다. 그는 발문에 사미 시절 유점사에서 뵙던 칠순의 화악스님을 회상하며“용모는 단아하고 정신이 맑으며 법음(法音)은 명쾌하고 얼굴에 자비가 넘쳐 물음에 가르침을 주시니 진실로 세상에 나오신 부처님 같았다”며 그리움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화악스님은 함월해원(涵月海源) 선사의 법손으로 대종사다. 선(禪)과 계율에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조상경(造像經)>을 화엄사상에 근거해 증명할 정도로 교학에도 해박했다. 또한 외전(外典)에도 밝고 문장이 뛰어나 김조순(1765~1832), 김정희(1786~1856) 등과 폭넓게 교류했다. 완당 김정희는“화악이 진영을 남기려 하지 않자 ‘내가 화악(華嶽) 두 글자를 크게 써서 대신하려 한다’ 하니 웃으며 허락하였다”고 할 정도로 화악의 심중을 헤아린 막역한 사이였다. 형상에 구애받고 싶지 않던 화악의 본뜻에도 불구하고 문도들은 통도사와 김룡사에 진영을 모셔 추모했다. 조선후기 진영에서 선사의 모습은 칠분면(七分面) 위주로 그려지는데 반해 김룡사 진영에서 화악스님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 장식 없는 황갈색 바탕에 짙은 먹색의 장삼을 입고 주장자를 든 스님의 모습은 질박했던 선사의 삶을 오롯하게 드러낸다. 특히 목을 움츠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두 눈은 필경(必慶)스님에게“나는 예전에 선정을 닦을 때 많은 시간을 목을 움츠리고 눈만 부릅떴다”고 언급한 화악스님의 수행 자세를 연상시킨다. 혜소의 영찬이 <삼봉집>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김룡사 진영에 그려진 스님의 형상은 혜소가 기억하는 유점사에서 뵙던 화악지탁 선사 모습 그대로 일 것이다.
    ☞ 불교신문 Vol 3088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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