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2 용암채청(龍巖彩晴)

浮萍草 2015. 10. 2. 00:00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은 참스승
    有而無者師之形 無而有者師之神 欲知師求之扵形 神之外有無之間 “있었으나 없어진 것은 스님의 모습 없었으나 남은 것은 스님의 정신 스님의 모습을 보고자 하거든 정신 밖에 유무의 사이이다.” 암체청 진영에 적힌 이원조(李源祚,1792~1872)의 영찬(影讚)이다. 이원조는 철종 때 대사간과 공조판서를 지낸 경북 성주 한개마을 출신이다. 19세기 중엽 김천 청암사에서는 진영각을 건립하고 스님들의 진영을 새로 제작하면서 이원조에게 용암채청의 영찬을 받아 기록하였다. ‘형상과 정신(形神)’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음(有無)’에서 선사의 참모습을 구하라는 이원조의 문장에는 불교의 공(空)사상이 담겨 있다. 진영의 주인공인 용암채청(龍巖彩晴, 1692~1754)은 회암정혜(晦巖定慧)의 고족제자이다. 9세에 하동 대흥사의 문언(文彦)장로에게 출가,회암정혜에게 수학하며 깨달음을 얻은 후 가야산,불영산 등 여러 명산을 유력하다 거창 용계산에서 입적했다. 입적 후 그의 승탑은 불영산 자락에 건립되고 진영은 청암사에 모셔졌다. ‘채청(彩晴, 맑고 푸른 빛)’이라는 법명대로 진영 속의 스님은 속세를 초월한 말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드러운 눈매와 둥그런 콧망울에서 넉넉한 성품이 엿보이며 하늘 빛 장삼에서 청천(晴天)한 품성이 풍겨 나온다. 제자 진철(振哲)은‘소박하고 자비로운 삶을 살았던 스승(師素行 盖正直誠敬 慈悲喜捨也)’을 회고하며,“스님이 태어남에 선도(禪道)가 생겨나고 스님이 입적하니 선 또한 사라졌다(惟師之生 禪道如生 惟師之沒 禪道如沒)”고 칭송할 정도로 두타(頭陀)의 표상이 되었다. 용암채청은 회암정혜의 강백(講伯)을 계승하는 한편 스승이 찬술한 <선원집도서과기(禪源集都序科記)>의 간행을 주도하고 행장(行狀)을 지어 업적을 널리 알리 고자 했다. 또한 영의정 조현명(趙顯命,1690~1752)에게 찾아가 스승의 비명(碑銘)을 받아 청암사에 비를 건립하였다. 이러한 정성을 기억하듯 용암채정의 문도는 그의 승탑을 청암사 회암정혜 승탑 아래 세워 추모의 마음을 이어갔다.
    ☞ 불교신문 Vol 3086 ☜      
    제찬 해제=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진영 설명=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