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1 혜암 정혜

浮萍草 2015. 10. 1. 06:00
    호방하고 기개 넘쳤던 화엄종장
    可見者 耳目之形 不可見者 耆好之情. 吾曾見君扵澄淸閣聲妓場中 亦如斯而已 此其所以爲如來席大心生者耶 (領議政 趙顯命 讚) "보는 것은 이목구비의 형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은 늙은이의 정이다 내가 일찍이 그대를 징청각 기생이 노래하는 곳에서 보았는데 또한 이와 같았다. 이것은 여래의 자리에서 큰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선 영조 때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이 지은 제찬이다. 이 가운데 오증견군어징청각성기장중역여사이이(吾曾見君扵澄淸閣聲妓場中亦如斯而已)는 1730년 징청각(경상도 감영 관사)에서 열린 경상도 감찰사 부임 축하 연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수행자의 면모를 보인 회암정혜선사에 대한 경외심을 회상하며 지은 구절이다. 회암정혜(晦庵定慧,1685~1741)선사는 숙종 37년(1711)에 율사(栗寺)에서 첫 강석(講席) 이후 석왕사,명봉사,청암사,벽송사 등에서 활발하게 강석을 펼친 화엄종 장으로 만년에는 김천 청암사에 주석했다. 부휴선수(浮休善修)-벽암각성(碧巖覺性)-모운진언(募雲震言)-보광원민(葆光圓旻)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으며 청암사,쌍계사를 중심으로 해인사, 직지사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회암대사행적(晦庵大師行蹟)>에는 스님이 입적한 후 청암사,벽송사,석왕사 등에 영당을 세우고 진영을 그려 모셨다고 전한다. 그의 행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암사는 회암스님과 인연이 깊은 사찰로 이 사찰의 강맥은 모운스님을 시작으로 회암스님을 거쳐 그의 문도들로 이어졌다. 현재 청암사에 봉안된 회암스님 진영은 입적 당시에 조성된 진영은 아니다. <청암사중수기(靑巖寺重修記)>에는 19세기 중엽 청암사에 영각이 다시 세워지고 회암스님의 진영을 이모해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영속 회암정혜선사는 오른쪽을 향해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선사의 심성이 드러나는 얼굴은 눈,코 입이 크고 뚜렷하고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가 호방하고 기개 넘쳤을 것으로 보인다. 장삼과 가사를 걸친 신체도 어깨가 넓고 앉은 자세가 의젓하여 풍채 또한 좋아 보인다. 진영에서 느껴지는 회암정혜 선사의 기상은 제찬에 그대로 드러난다. 청암사는 김천 불령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구니 스님들의 예경과 경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청정도량이다. 오늘날 청암사를 밝히는 교학의 전통은 조선 후기 청암사에 주석했던 회암정혜선사에게서 찾을 수 있다. * 이번호부터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정안스님이 고승진영에 담긴 뜻(진영 찬)을 소개합니다. 진영설명은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이 맡았습니다.
    불교신문 Vol 3084 ☜      
    정안스님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