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6 아파트 거실마다 '뻐꾸기시계'… 1990년대 신도시 붐 타고 히트

浮萍草 2015. 9. 17. 06:00
    ▲  1994년 신문에 실린 광고의 일부.“부잣집에는
    반드시 뻐꾸기시계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집 저 집 뻐꾸기들이 한 시간마다 울어댔다. 1990년대 많은 아파트촌의 풍경이다. 당시 좀 여유 있는 집이라면 거실 벽에 뻐꾸기시계 하나쯤 걸어놓는 게 크게 유행했다. 정시마다 통나무집에서 쏙 튀어나온 앙증맞은 새는 울음 횟수로 시간을 알려줬다. 1987년 국내 업체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부터 보급이 늘기 시작했다. 유행에 불을 댕긴 건 신도시였다. 1991년 9월 분당,1992년 12월 일산 신도시가 등장해 아파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거실의 휑한 벽을 채울 물건의 수요가 급증했다. 예쁜 통나무집 모양의 뻐꾸기시계는 실내에 표정을 불어넣을 장식품으로도 딱이었다. 한 업체는"뻐꾸기 울어대는 그대 거실은 이미 숲"이라고 광고했다. 한동안 집들이 선물이나 업체들의 경품·판촉 용품도 이 시계가 휩쓸었다. 1992년엔 제조업체가 20곳이 넘었다. 1995년 8월 1일 국내 TV홈쇼핑 방송 개시 때 판매상품 1호도,같은 해 1월부터 8월까지 한 신용카드 고객들이 가장 많이 구매한 상품도 뻐꾸기시계였다(조선일보 1995년 8월 2일자). 이 무렵 KBS 아나운서실에는 매시 40분마다 우는 뻐꾸기시계가 걸려 있었다. 한 신입 아나운서가 정시 뉴스 방송할 시간을 깜빡 잊는 사고를 낸 후 모든 아나운서들에게 뉴스 방송 20분 전을 잊지 말라고 알람을 울리게 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뻐꾸기는 아기자기한 통나무집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제 둥지도 없이 개개비,멧새 같은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얌체새'다. 하고많은 새 중에서 왜 뻐꾸기 소리를 시계에 썼을까. 한 동물학자는"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는 부근에서 자신이 진짜 어미임을 알리려고 뚜렷한 소리로 울어댄다"며"뻐꾹 뻐꾹 분명하게 끊기는 소리여서 시계에 썼을 것"이라고 보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뻐꾸기시계 유행은 시들해졌다.
    오늘의 30~ 40대들에게 숲속 통나무집에서 작은 새가 튀어나오던 그 시계는 동심(童心)을 자극한 물건이었다. '시간을 알리고 들어간 뻐꾸기는 집 안에서 무얼 할까'궁금해 했던 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 시계 속 세계를 소재로 삼은 애니메이션'똑딱하우스'를 제작해 세계 170 여개국에 수출했다. 정길훈 퍼니플럭스 대표의 경우다(조선일보 2011년 12월 22일자). 소녀 시절 뻐꾸기시계가 한없이 신기했던 송지혜씨도 시계 속을 여행하는 내용의 책'시간의 정원'을 작년 말 출간해 프랑스,대만,중국 등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전자회로 속 '박제(剝製)된 뻐꾸기'도 인간을 자극하고 영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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