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8 "공중전화 놔두고 왜 휴대폰 쓰나" 유선전화 회사 간부, 소년과 충돌

浮萍草 2015. 9. 17. 18:00
    ▲  밀실에 가까운 1938년 경성 자동전화실(왼쪽),현재
    국내 공중전화 부스(가운데),예쁜 전화 부스의 세계적
    모델이 된 영국의 레드 텔레폰 박스(K2형).
    1997년 10월, 유선전화 사업체의 국장급 간부가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10대 소년과 말다툼을 벌였다. 간부가 소년에게"공중전화를 코앞에 놔두고 왜 휴대폰을 쓰느냐"고 따진 게 발단이었다. 당시 그 회사 직원들에겐"사람들이 공중전화 앞에서 휴대폰을 안 꺼내게 만들라"는 특명이 떨어져 있었다 (조선일보 1997년 10월 27일자). '휴대폰 1000만 시대'가 닥치자 유선전화 쪽 신경이 얼마나 곤두서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마침내 1998년 상반기, 무선전화 매출액이 유선전화를 추월했다. 이때부터 시대의 퇴물이 되기 시작한 게 공중전화 부스다. 공중전화 부스는 1920년대 초반 이 땅에 등장했다. 처음엔 '자동전화실(自動電話室)'이라고 불렸다. 광복 후엔 1962년 서울 도심에 선보였다. 집 밖의 유일한 전화였기에 부스마다 장사진을 치기 일쑤였다. 앞사람 통화가 5~6분을 넘기면 뒷사람이"전화를 전세 냈느냐"며 시비 붙기도 했다. 번잡한 도심에 섬처럼 떠 있는 프라이버시 공간은 통화 외에도 여러 용도로 쓰였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는 곳도 됐다. 초창기인 1922년부터 전화실에 대·소변을 본 사건이 11건이나 잇따르더니 똑같은 추태가 90여년 지난 오늘 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많은 영화의 명장면들도 전화 부스에서 빚어졌다. 특히 암흑가 영화 주인공의 최후와 인연이 깊다. '영웅본색2'(1987년)에서 총을 맞은 장국영은 전화 부스에서 아내와 통화하며 갓 태어난 아기 이름을 지어주고 스러져 갔다. 한국 영화'게임의 법칙'(1994년)의 박중훈이 사이판을 꿈꾸며 죽어 가던 공간도,초록물고기'(1997년)에서 칼을 맞은 한석규가 형과 마지막 통화를 하며 관객을 울리던 곳도 모두 공중전화 부스다. 1인용 공간의 쓸쓸함이 한 남자의 마지막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전화 부스의 유혈극은 현실에서도 없지 않았다. "통화 빨리 끝내라"고 재촉하는 여성을 사내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1990년 한여름에 터져 세상을 경악시켰다(조선일보 1990년 8월 22일자). 공중전화 부스는 1990년대 말 15만여대에 이르렀으나 현재 7만여대로 반 토막 났다. 하지만 늘고 있는 전화 부스도 있다. 통화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사무실 등에 설치되고 있는 휴대폰 부스다. 흥미롭게도 휴대폰 부스 대부분은 영국 거리의 명물인'레드 텔레폰 박스(red telephone box)' 모양이다. 1926년 런던에 설치된 이래 가장 아름다운 전화 부스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공중전화는 사라지지만 전화 부스는 더 예쁘고 편리하게 진화하고 있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