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5 '웃으며 살자' 외친 스마일 배지… '정치의 겨울' 1972년 유행 시작

浮萍草 2015. 9. 17. 00:00
    긋 웃는 얼굴 모양의'스마일 배지(smile badge)'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가 묘하다. 
    정치 상황이 꽁꽁 얼어붙고 있던 1972년 2월이다. 
    전년도 12월 6일엔 박정희 대통령이'국제정세 급변'과'북한의 위협' 등을 언급하며'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12월 27일엔 비상사태 아래서 대통령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권리 등을 제약할 수 있도록 하는'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1972년 10월 17일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10월 유신'도 선포됐다. 
    웃을 일 찾기 힘들던 정치의 겨울에'웃으며 살자'는'스마일운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잃은 웃음 되찾자'는 여성 단체의 구호가 정곡을 찔렀다(조선일보 1972년 3월 28일자). 
    스마일 배지도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도 버스 안내양들도 제복에 배지를 달도록 '강하게' 권장했다.
    ▲  1972년 스마일 배지 유행을 다룬 신문 기사(조선일보 1972년 12월 30일자). 아래는 다채로운 표정으로 부활한 오늘의 스마일 배지들.

    웃으며 살자는 게 나쁠 거야 없었다. 관(官) 주도로 진행된 하향식 운동이라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내무부에는'스마일운동 주무관' 등의 담당자가 임명됐다. 1970년 시작된 새마을운동처럼 스마일운동도 범국민 운동의 반열에 올랐다. 캠페인이라기보다는'국민 여러분, 인상 좀 펴고 삽시다'라는 '협조 요청' 같았다. 웃자고 운동을 벌이는 것 자체가'웃기는 일'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을 친절하게 대하자며 배지를 달았지만 오랜 세월 굳어 있던 안면 근육이 배지 하나 달았다고 말랑말랑해질 리 없었다. 1972년 7월부터 해외여행자 과다 휴대품 반입 억제 조치가 강력 실시될 땐,공항 입국장 검사대에서 스마일 배지를 단 세관원들이 역시 스마일 배지를 단 여행자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진풍경이 빚어졌다(매일경제 1972년 7월 5일자). '국가 시책' '이웃 돕기' 등을 내세우며 스마일 배지를 파는 약삭빠른 상혼(商魂)까지 날뛰었다. 여고생 120여명을 모집해 여러 기관에 배지를 강매한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한동안 뜸했던 스마일 배지 유행은 1996년 다시 불붙었다. 주로 여학생들이 교복,가방,모자 등에 동그란 배지를 달았다. 누가 권해서 단 게 아니라'그냥 귀여워서' 달았다는 점에서 70년대와 달랐다. 배지의 표정도 찡그린 얼굴 등으로 다양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스마일 배지는 1963년 미국에 등장한'스마일리(Smiley)'캐릭터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물론 스마일리는 범국민 운동 같은 것과 무관하다. '목에 힘주던' 한국 스마일 배지가 제자리를 찾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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