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4 주부들 '초인종' 소리에 공포증… '짧게 두 번' 등 가족 간 비밀 신호

浮萍草 2015. 9. 10. 21:00
    '도시 주부들 사이에 새로운 정신병이 퍼지고 있다.' 
    1972년 다소 충격적인 기사가 신문 사회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그 '정신병'이란 '초인종(招人鐘) 노이로제'다. 
    집에 있다가 누군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만 듣고도 깜짝 놀라 쩔쩔매는 공포증으로 정신병원까지 찾는다는 것이다(조선일보 1972년 3월 22일자). 
    왜 그렇게 놀랐을까. 
    1960~1970년대 대부분의 초인종이 누르면 소리가 나는 단 한 가지 기능만 가진 것이 문제였다. 
    방문자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폰이나 비디오폰이 본격 보급되기 전 갑자기 울리는 딱딱한 기계음은 사람을 긴장시킬 만했다. 
    신문은 '미지의 방문객 신원을 확인할 때까지의 시간 동안 불안이 지속된다'고 썼다.
    ▲  주부들의 '초인종 노이로제'가 늘고 있다는 기사(조선일보 1972년 3월 22일자·왼쪽)와 옛 초인종 버튼

    전기식 초인종은 1920년대 신문에도 언급될 만큼 오래된 물건이다. 반구형(半球形)의 몸체 가운데에 작은 버튼이 돌출된 스위치 모양 때문인지 여성의'가슴'을'에로스의 초인종'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동아일보 1932년 2월 1일자). 보급이 급증한 것은 1970년대 아파트 시대가 꽃피면서부터다. "계십니까" 하는 고함만으론 주인을 부르기 어려운 아파트에서 초인종은 필수품이 됐다. 1982년 발표된 윤수일의 히트 가요'아파트'는'딩동'초인종 소리로 시작됐다. 아파트 주민들은 초인종 소리에 더 민감해졌다. 초인종 공포증 환자의 80%가 아파트 주민이었다. 새벽 2시에 남의 아파트를 자기 집으로 착각한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혼자 자던 젊은 여성이 강도로 오인하고 탈출하려다 3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건도 일어났다. 불안감을 없앨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신문은 '초인종을 누름과 동시에 육성으로 누구임을 크게 소리치자'며'문명의 이기와 원시적 수법의 병용으로 문제를 타개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족 간에 누르는 시간의 장단(長短)과 횟수로 특별한 약속을 정하자는 묘안도 나왔다. 1973년 신문은 아빠는 짧게 두 번,엄마는 짧게 한 번,오빠는 길게 한 번 식으로 정해 두면 즐겁게 문을 열고 맞을 수 있다'고 권했다.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진 이어령의 희곡 제목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극 중 고급 콜걸의 집을 단골 고객이 찾을 때 누르는 초인종 비밀 신호다. 오늘날엔 여자나 어린이가 혼자 있을 때 인터폰이 와도 성인 남자 목소리로 변조해 응답해 주는 인터폰까지 나왔다. 훨씬 안심할 수 있게 됐지만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훨씬 늘어났다. '길게 두 번,짧게 한 번'식의 초인종 신호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던 일화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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