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흔들리는 공무원

4 "세종시 이전 후 정책 역량 떨어져"

浮萍草 2015. 8. 20. 08:00
    공무원 설문조사 결과 69.4% “과거보다 역량 떨어져”
    “잦은 출장 탓에 사무관 교육 제대로 안되는 게 문제” 
    ▲  작년 5월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실 복도를 직원들이 걷고 있다.
    업통상자원부에서 무역 관련 업무를 하는 30대 초반 사무관 A 씨는 서울로 출장을 갈 때마다 술 한 잔 하자는 B 과장의 말이 부담스럽다. 일이 끝나고 기업 관계자들과 소주 한잔 하면서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야 정책을 만들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다시 KTX를 타고 세종시로 돌아올 생각을 하면 몸이 무거워진다. 매번 거절하고 세종시로 돌아갈 때면 뒤통수가 따갑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집에서 책을 읽거나 동기들을 만나 맥주 한잔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B 과장의 생각은 다르다. 세종시에 틀어박혀 공무원들끼리만 만나면 본인은 편하겠지만 책상머리 정책밖에 나오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들을 소개해 주려고 자리를 애써 만들어도 사무관이 KTX 티켓을 예매했다고 대답하면 강요하기가 힘들다. B 과장은 “매일 공무원들끼리 만나 비슷한 얘기를 하다 보면 공무원 사회가 하나의'섬'처럼 되고 갇힌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대다수 공무원은 세종시 출범 이후 정책 역량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국회,금융시장 등 정부를 제외한 주요 협의 기관이 여전히 서울에 있어 출장이 잦아진 영향이 컸다. 상사와 부하 간 소통이 부족해지면서 공무원 사회가 하나의 섬처럼 고립될까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ㆍ“부하 직원 얼굴 볼 시간도 없다”…무너지는 도제식 교육

    조선비즈가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 부처 5급 이상 공무원 203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4%는 공무원들의 정책 역량이 과거보다 떨어졌다고 답했다. 이중에서 현저히 떨어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18.7%나 됐다. 30.5%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다고 대답했다. 정책 역량이 떨어진 이유로 상사와 부하의 소통 부족(42.4%)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서울로 출장이 잦아지면서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할 시간이 적어졌고 자연스럽게 상사와 부하 간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공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중앙부처의 C 국장은 올 초에 일주일에 2~3번씩 서울로 출장을 갔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출퇴근하는 그는 서울에서 오후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곧장 집으로 퇴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시에도 오피스텔을 얻어 놓았지만 일주일에 고작해야 1~2일만 머무른다. 그는“올 초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다고 출장 현황을 조사했을 때 나는 우리 부처에서 상위 20%에도 들지 못했다”며“출장이 많은 국장들은 거의 서울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출장이 잦다 보니 부하 직원들의 대면 보고가 많이 감소했고 자연스럽게 도제식 교육 기회도 줄었다. 기획재정부의 한 국장은“이전엔 사무관이 올린 보고서가 미흡하면 뭐가 잘못됐는지 알려주고 고치라고 하면서 가르쳤는데 지금은 사무관이 올린 보고서를 과장이나 국장이 직접 수정해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늘었다”며“부처가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사무관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의 한 서기관은 "요즘 사무실에 앉아서 신입 사무관을 혼내면서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라면서"일단 일주일에 3~4번은 서울에 출장을 가 있으니 혼내기는커녕 얼굴 보고 술 한 잔 먹을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ㆍ툭하면 부르는 국회…‘섬’이 된 세종시

    설문에 응한 공무원 중 22.7%는 국회의 잦은 호출도 공무원의 정책 역량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았다. 해양수산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요즘에는 국회가 거의 상설화 되는 분위기인데 일단 열리면 한 달에 절반 이상은 국회로 출근하고,예산 시즌에는 거의 상주한다" 면서 "다른 부처와 협의할 일도 많은데 국회로 왔다 갔다 하면서 생기는 비효율이 말도 못하게 크다”고 강조했다. 최근 공무원들이 내부 자료를 카카오톡을 통해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보 유출 우려가 제기됐는데 이 역시 잦은 출장 탓이라고 공무원들은 설명했다. 업무상 필요한 자료를 서울로 출장 간 사람에게 급하게 보낼 일이 많은데, 공무원용 SNS(바로톡)은 작동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시장과의 소통 부족(19.7%)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혔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기 전에 업계 관계자,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세종시로 옮긴 이후로는 그런 자리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한 정부 부처의 과장은 "매번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업계 사람들을 세종시로 부를 수도 없으니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면서"직접 만나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과는 접할 수 있는 정보량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의 한 사무관은 “세종시가 공간적으로 일반 사회와 단절돼 있고 공무원밖에 없으니 (공무원들이)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책상 앞 에서 일만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세종시에는 공무원과 자영업자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비즈 설문에 응한 공무원의 약 90%는 국회나 청와대가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고 응답했다. 64.0%는 국회와 청와대가 모두 내려와야 한다고 답했고, 24.1%는 국회만 내려오면 된다고 답변했다. 국회와 청와대 모두 내려올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8.4%에 그쳤다.
    Biz Chosun ☜       조선비즈 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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