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흔들리는 공무원

2 국회·시장으로 넘어간 권력

浮萍草 2015. 8. 17. 11:02
    중앙부처 과장“국회에선 가을날 길가의 낙엽만도 못해” 
    다수 공무원“국회에 권한 치중…국회도 세종으로 와야”
    난 봄 중요한 정책을 발표한 경제부처의 A과장은 정책 설명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가 얼굴이 빨개지는 일을 겪었다. 
    담당 상임위의 보좌관들에게 정책을 설명하러 갔지만 보좌관들이 국장이 와서 설명하라며 A과장을 만나주지도 않은 것이다. 
    A과장은“과거에는 중앙부처 과장이 국가정책을 만드는 핵심이었는데 이제 여의도에서는 가을 길가에 치이는 낙엽만도 못한 존재가 됐다”며 한탄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과거와 비교해 공무원들의 권한이 감소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조선비즈가 세종시 공무원 2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3%인 169명이 ‘공무원의 권한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 
    ‘약간 줄었다’(20명)고 답한 응답자까지 합치면 93%가 권한이 과거보다 줄었다고 답한 것이다.
    ▲  그래픽=박종규

    실제로 과거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권한은 막강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장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일화를 회고록에 적었다. 그만큼 일선 공무원들의 재량권이 컸다는 말이다. 하지만 갈수록 국회로 권력의 균형추가 넘어가면서 이런 일화는 말 그대로 추억이 됐다. 이제는 국회의 허락 없이는 정책 집행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마련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3년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담당 공무원들이 수시로 국회를 찾아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언제 통과될 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다 민간기업으로 옮긴 B씨는“이전에는 법 통과 못 시키는 사무관은 바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국장이 해도 안 된다”고 했다. 조선비즈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7%인 195명의 공무원이 ‘국회에 권한이 치중돼 있다’고 답했다. 국회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 때문에 업무에 차질이 있다고 답한 공무원이 148명(74%)이었고, 나머지 47명(23.2%)은 업무에 차질은 없지만 권한이 국회에 치중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정부와 국회의 관계가 균형이 잘 잡혀 있다고 답하거나 국회로 권한이 더 이양돼야 한다고 답한 경우는 8명에 불과했다. 공무원들은 세종시 이전 후에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한다. 국회에서 수시로 간부급 공무원들을 부르면서 업무의 비효율성이 커졌다. 국회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나 간단한 회의에도 실무진보다는 간부들을 부른다. 세종시에서 정책을 만들 시간조차 없어진 것이다. 어렵게 만든 정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난도질당하는 것을 보고 상실감을 느끼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한 경제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최근에는 정책을 만들 때부터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운 정책은 제외하는 경우가 있다”며“공무원들의 권한은 줄고 책임은 여전해 전반적으로 공무원 사회 분위기가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전직 장관은 사석에서 “국회로 권력이 넘어가다 보니 공무원들이 태업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세종시 공무원들은 그나마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회와 청와대도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수시로 공무원들을 호출하는 국회가 세종시로 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130명(65%)이 국회와 청와대가 모두 내려와야 한다고 답했고, 49명(24.1%)은 국회만 내려오면 된다고 답했다. 국회,청와대 외에 행정자치부 등 다른 행정기관도 모두 내려와야 한다는 의견과 세종시가 아니더라도 국회,청와대,행정기관이 한곳에 모여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변화하며 과거 정부에 쏠려있던 권한이 기업 등 민간으로 분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계획에 따라 경제 성장이 이뤄지던 과거에는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했지만,지금 경제 구조에서는 정부는 민간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로 물러나며 자연스럽게 공무원의 권한이 줄었다는 것이다. 경제부처에서 국장을 지내고 물러난 C씨는“과거 공무원들은 한 손에는 재정과 세제 등 인센티브를,한 손에는 규제를 쥐고 우리 시장을 움직였지만 지금은 기업과 소비자의 역할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그만큼 공무원의 권한도 줄었다”며“바뀐 경제구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공무원 권한 변화로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고용 정책만 봐도, 몇 년 전까지는 정부가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재정을 통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현재는 새로운 정책적 지원 보다는 기업의 적극적인 고용을 호소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정부의 권한이 상당 부분 민간으로 이양됐음에도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의 역할을 과도하게 기대한다는 것이다. 산업 규제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한 중앙 부처 과장은“정책 설명회 등을 통해 민원을 접하다 보면 정부 규제를 완화해 시장의 자율성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시장 조성이나 자율적으로 마련해야 할 질서 수립에 있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나타난다”며“이런 경우 공무원 역할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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