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흔들리는 공무원

1 10명 중 9명 "정년 전에 이직하고 싶다"

浮萍草 2015. 8. 17. 10:50
    “마치 한국의 고속 경제성장의 비결을 발견한 듯했다. 공무원들의 충성,투철한 열의에 놀랐다. 대통령의 지시가 장관에 떨어지면 장관은 바로 해당 간부회의를 열고 담당 차관보,국장,과장,사무관들은 그때부터 불철주야 작업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지식이나 논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헌신적 노력, 열의라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은 1970년대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원장 시절 옆에서 지켜본 공무원을 이렇게 회상하며 우리가 고속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한 요인으로 ‘공무원의 열의와 충성’을 꼽았다. 한국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압축 성장을 하면서 빠르게 근대화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밤낮없이 조국에 헌신했던 공무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랬던 공무원들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역군들에게 세월호 사고 이후 불거진 관피아 논란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김영란법 통과, 공무원 연금개혁 등은 사기를 꺾었다. 공무원들이 흔들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국가 정책의 정교함은 떨어지고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퍼지면 경제 활력은 떨어진다. 공무원들의 현 주소를 시리즈로 알아본다. [편집자주]

    관피아 논란·김영란법·연금개혁에 “일할 맛이 안 난다” 자존심으로 버텼던 공무원 “왜 일 하는지 모르게 됐다” "18년 일해도 과장 못달아" 공직 떠나는 공무원 급증 앙부처에서 촉망 받던 A 국장은 지난해 돌연 사표를 냈다. 사직서를 냈을 당시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그는“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고 했다. 20년 남짓 공무원 생활을 한 A 국장이 한 달에 받았던 급여는 한 달에 400만원 후반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는 “자녀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표를 내고 얼마 후 대기업 임원으로 재취업했다. 중앙부처 B 과장은 올 초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B 과장은 공무원 생활을 더 하면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려고 했지만 기회가 오자 지원을 했고 합격과 동시에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그는 “내가 있는 부처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는데 나오니까 마음이 편하다”며“오래전부터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예정보다 3~4년 정도 빨리 나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공직을 떠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민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모든 공무원을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는 가슴 속에 큰 상처가 됐다.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논란으로 재취업은 더 어려워졌고 공직자가 대가와 상관없이 한 사람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식사 대접 등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 하는‘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통과되면서 자존심이 무너졌다. 인생의 마지막 버팀목으로 여겼던 공무원연금은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는 여론에 밀려 매월 수만~수십만원씩 줄어들게 됐다. 한 부처의 과장은“월급은 적은데 재취업이 어려워지면 (인사적체로) 승진은 더 늦어지는 것 아니냐”며“연금은 깎이고 김영란법으로 공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니 도무지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ㆍ“왜 이렇게 일해야 하나”…공직 떠나는 공무원 급증
    ▲  그래픽=박종규

    작년부터 관피아 논란과 김영란법 통과,공무원 연금개혁,세종시 이전 등의 일들이 잇따라 진행되면서 상당수 공무원이 공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공직을 떠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비즈가 세종시로 이전한 14개 부처,203명의 공무원을 대상 설문조사를 한 결과‘정년 퇴임 전에 민간으로 이직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85.9%가‘그렇다’ 고 했다. 75.9%는 조건에 따라 이직한다고 했고 10%는 무조건 떠나고 싶다고 대답했다. 올 초 공무원을 그만둔 중앙 부처의 C 과장은“주변에 (행시 합격 후) 18년을 근무해도 과장을 못 다는 사람들이 있다. 민간 기업에서 한 직급에 20년 가까이 근무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승진이 너무 느리고 조직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적폐라고 비난만 한다. 공무원 연금도 공무원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끌고 갈 지를 보면서 개혁해야 하는데 무조건 뜯어 고친다고 하니 불만이 많은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공직을 떠나는 공무원도 급증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정년 전에 그만둔 일반직 공무원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1175명에서 지난해 2932명으로 크게 늘었다. A 국장은“보통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거나,명예나 권력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데 공무원들은 자존심으로 일했다”며“그런데 (관피아 논란 등으로) 그게 없어 지니 공무원들이 왜 일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내부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이직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모 부처의 D 과장(부이사관)은 현재 퇴직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비(非)고시 출신인 그는 능력을 인정 받아 줄곧 주요 부서에서 근무했고 다른 비고시 공무원들의 롤모델(role model)로도 꼽히고 있지만‘비고시 출신’공무원이 계속 승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D 과장은 이제 갓 50세를 넘겼다. 그와 같은 부처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능력을 보지 않고 간판만 보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ㆍ공무원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아이

    공무원들은 전반적으로 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조선비즈 설문 결과‘공무원의 사기가 저하됐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무려 97.5%인 198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사기가 저하된 가장 큰 이유로는‘사회적 분위기 악화’가 꼽혔다.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공무원들을 비리의 온상이라고 여기는 시선들이 늘어난 탓이다. 또 공무원 연금 개혁으로 연금액이 줄고 재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사기가 꺾였다는 대답도 많았다. E 국장은 작년 세월호 사고 이후 가족들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E 국장은 세월호 사고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처에서 근무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이후 아들은 학교에서 아빠가 공무원이라고 말을 안 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자식이 공무원이라고 말을 안 하고 그냥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고 하시더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었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공무원 중 62.6%는 다시 진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행정부가 가졌던 권한이 국회와 시장으로 점점 이동하면서 공무원으로서의 보람은 점점 사라지고 연금개혁,재취업 심사 강화 등으로 민간과의 경제적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다.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과거엔 공무원이 중요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공무원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기인 것 같다”며“공무원들도 변하는 세상에 적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Chosun Biz ☜       조선비즈 정책팀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