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朝線時代 夫婦사랑法

9 하욱과 김삼의당

浮萍草 2015. 8. 21. 00:00
    첫날밤에 시를 읖조리며 신경전을 벌였던 부부
    천생연분 생연분이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천생연분이란 ‘천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하는 인연 즉 1/1000의 인연을 말하는 듯하다. 그만큼 천생연분이란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요, 부부간 금슬이 좋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후기 여성문인이었던 김삼의당과 하욱 부부를 들 수 있다. 김삼의당은 조선후기 여성문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시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김삼의당(1769~1823)은 본관이 김씨요, 당호가 삼의당(三宜堂)이었다. 전라도 남원의 서봉방에서 몰락한 사족의 딸로 태어났고,18살에 같은 해,같은 날,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하욱과 결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했다. 또 전라도 남원을 배경으로 하고 생년월일이 같은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과 이도령을 떠올리곤 했다.
    ▲  하욱-김삼의당 초상화.

    천생연분이어서일까. 두 사람은 결혼 첫날밤부터 시를 주고받으며 은근히 사랑을 주고받는다. 먼저 하욱이 연달아 시 2수를 읊어 천생연분을 만난 걸 좋아하면서도 앞으로 아내의 도리를 다하라고 얘기한다. 열여덟 새 신랑 열여덟 새 신부 동방화촉 밝히니 좋고도 좋은 인연 같은 해와 달에 태어나고 살기도 같은 동네 이 밤의 우리 만남 어찌 우연이리
    부부의 만남에서 백성이 생겨나고 군자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오 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 몸이 다하도록 낭군의 뜻 어기지 말기를

    그러자 삼의당도 하욱과 마찬가지로 연달아 시 2수를 읊어 하늘이 정해준 인연을 만난 걸 좋아하면서도 앞으로 남편 노릇을 잘하라고 당부한다. 우리 둘이 만났으니 광한루 신선 이 밤의 만남은 옛 인연을 이음이라 배필은 본디 하늘의 정함이니 세상의 중매란 다 부질없네
    부부의 도리는 인륜의 시작이니 온갖 복이 여기에서 비롯된다오 시경의 <도요편>을 다시금 살펴보니 온 집안의 화목함이 당신 손에 달렸소

    두 편의 시를 살펴보면 결혼 첫날밤에 신랑 신부의 풋풋하고 설레는 마음과 함께 두 사람의 은근한 신경전이 느껴진다. 하욱이 공경하고 순종함이 아내의 도리이니 낭군의 뜻을 어기지 말라고 하자,삼의당은 온 집안의 화목함이 당신 손에 달렸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특히 당돌하게 남편의 말을 맞받아치는 삼의당의 모습에서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ㆍ내조의 여왕
    하씨 집안의 조상 중에는 영의정을 지낸 사람도 있었으나,7대조가 홍문관 교리를 지낸 뒤로는 벼슬길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게다가 증조부가 세거지인 경기도 안산에서 전라도 남원으로 낙향한 뒤로는 거의 시골양반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씨 집안이 평민층으로 전락하지 않고 양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다시 벼슬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에 삼의당은 신혼의 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욱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산사(山寺)로 올라가 공부하라고 한다. “학문이란 조용함을 필요로 합니다. 조용한 이후에야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은 이후에야 공부에 전념하게 되는 법이지요. 시골에 있는 서당이나 마을의 글방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 못되고 야외나 성의 남쪽도 공부에 전념할 만한 곳이 못됩니다. 고로 옛사람들은 조용한 장소를 골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중국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향두를 찾았고, 시인 이태백은 광려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신혼 때부터 생이별을 하고 별거생활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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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낙방한 남편이 양반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아내가 쓴 비책
    ▲  필자미상, <평생도> 중 소과응시. /국립중앙박물관
    디 그 뿐이랴. 20세 무렵, 삼의당은 하욱이 산사에서 공부하는 것도 부족하다고 여기고서 하루는 무작정 한양으로 올라가 공부하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다가도 나중에는 게을러지기 쉬운 법인데 당신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 하씨 집안에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이가 드물고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 음식을 마련해서 끼니를 챙겨드리는 일은 제가 맡아서 할 것이니 당신은 밖에서 빨리 과거에 급제하여 부모님을 영화롭게 해드리세요. 당신의 나이 지금 스무 살이고 신체도 건강하니, 지금이야말로 힘을 내고 뜻을 가다듬을 때입니다.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편안히 지내면서 졸장부처럼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이처럼 삼의당은 남편 하욱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해 결혼 초부터 계속 강력하게 다그쳤다. 그렇다고 삼의당이 남편의 출세를 위해 혈안이 된, 그야말로 매정한 아내는 아니었다. 이후 그녀도 하욱을 한양으로 떠나보낸 뒤 남편을 그리워하며 밤잠을 못자고 눈물을 흘리곤 했다. 예컨대 다음의 시를 읊어보자. 님 그리는 괴로움이여 님 그리는 괴로움이여 닭이 세 번 우니 날이 밝아오네 밤잠 못 이루며 원앙금침을 대하니 눈물이 비 오는 듯하네 눈물이 비 오는 듯하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욱은 연거푸 과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시골 출신에다 변변한 스승이나 인맥조차 없었으므로 과거에 급제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삼의당은 편지를 써서 의복과 함께 한양으로 올려 보내 남편을 위로하곤 했다.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과거 시험장의 소식을 물어보게 했더니,당신이 이번에도 또 낙방한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도 고생이 많았겠지요? 나는 앞으로도 힘껏 뒷바라지하겠습니다. 작년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양식을 마련했고 올봄에는 비녀를 팔아 여비를 마련했습니다. 내 몸의 장신구들이 다 없어진다 한들 당신의 과거 공부에 드는 비용을 어찌 모자라게 할 수 있겠습니까? 듣자하니 가을에 또 경시(慶試: 국가의 경사가 있어 임시로 보는 과거 시험)가 있다 하니 내려오지 못하겠지요. 마침 소식을 전할 일이 있어 편지를 써서 웃옷과 함께 보냅니다.
    이후로도 하욱은 번번히 과거에 낙방했다. 그럼에도 삼의당은 가난을 견디며 꿋꿋하게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욱이 자신은 글공부에 자신이 없어 과거에 급제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한 뒤,진안 마령의 방화리로 이사해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삼의당이 곧바로 대답했다. “당신의 말이 이치에 합당한데, 어찌 하루라도 빨리 그곳으로 가서 일을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삼의당은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남편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하는 얼핏 보면 이기적인 여인처럼 처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때와 한발 물러서서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할 때를 잘 알고 있는 현명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럼 하욱의 집안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영영 평민층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이후 삼의당은 다시 한번 기지를 발휘하는 하욱의 형제들을 효자로 만들어 관아에 추천토록 한 것이다. 당시엔 집안에서 효자나 열녀가 나오면 그나마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천생연분의 운명을 타고난 부부일지라도 인생이란 가혹한 현실 앞에선 어찌할 수 없었다. 천생연분은 단지 하늘이 맺어준 인연에 불과할 뿐, 그것을 일구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건 결국 우리 인간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신은 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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