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

17 러시아인보다 소득 더 높은 시베리아 원주민 야쿠트인

浮萍草 2015. 8. 8. 11:31
    에벤족과 이민족 혼혈로 생겨난 야쿠트족이란?
    쿠트인은 누구인가? 언어로 보면 분명히 터키어 계통이다. 
    그럼 투르크족인가? 얼굴이나 피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와 아주 닮았다.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진 민족을 꼽으라 하면 그중에 야쿠트인도 들 수 있다.
    러시아에서 러시아인을 빼고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은 타타르인,부랴트인,코미인,알타이인,체첸인 등이 있다. 
    이들 민족 중 야쿠트인은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야쿠티야는 한반도의 15배이다. 
    인구는 백만에 불과하다. 
    그중 야쿠트인은 40만 정도이다. 
    인구가 얼마 되지 않으면서도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야쿠트인을 시베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민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야쿠트인은 어디서 왔는가? 여러 가지 설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답을 에벤 사람에게서 들었다. 
    에벤키어나 에벤어로 “야크”는 ‘무엇’이란 뜻을 가진 단어이다. 
    에벤키 사람들과 에벤 사람들은 이들을“요크” 또는 “뇨크”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을까? 그 이유는 에벤키, 에벤인과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래전,아마도 10세기 이전부터 에벤키와 에벤 사람들은 시베리아에 터를 잡고 순록을 키우거나 사냥을 하며 살았다. 
    시기적으로 발해가 멸망한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발해의 영토는 지금의 야쿠티야 남부까지 아울렀다. 
    발해는 926년에 멸망하였다. 이 나라가 멸망한 후 발해를 구성하였던 민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야쿠트어로만 공연하는 연극전용극장,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지방도시 극장.

    11세기 이후 시베리아 남부에서는 큰 변화가 일었다. 그 변화는 바이칼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테무친이 바이칼 지역을 통일하고 칭기즈칸이 되었다. 그 지역에는 몽골족과 타타르족이 같이 살던 곳이었다. 몽골족이 지역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일부 타타르족이 이탈하였다. 그들은 레나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이미 터를 잡고 살던 원주민을 만났다. 그들이 에벤키와 에벤이다. 에벤키와 에벤은 순록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순록만큼이나 순한 민족이었다. 무기나 도구 같은 것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이민족은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칼과 창이 있었다. 순록 치기 유목민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연히 그들은 새로운 이주자에게 복속하거나 더 먼 숲 속으로 도망쳐야 했다. 새로운 이주자들은 에벤키, 에벤과 섞이면서 새로운 민족이 되었다. 이도 저도 아닌 혼혈족이 나타났다. 아메리카 대륙의 물라토나 메스티소 같은 혼혈족이 생긴 것이다. 순수 혈통을 고집하던 에벤키와 에벤족 사람들에게 이 혼혈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식이 바로 혼혈인들을 ‘무엇’에 해당하는 “요코”라고 부르게 된 동기일 것이다. 새로운 민족 “요코”는 대단히 개방적이며 주위 환경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였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시베리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들은 순록 대신 소와 말을 기르며 한 장소에 정착하였다. 정착민으로서 마을을 형성하고 세력을 키웠다. 18세기 러시아인들이 나타났다. 원주민 에벤키인에게 러시아인들이 물었다. “저 사람들이 누구요?” “요코!” 러시아인들은 “요코”에 ‘-우트‘라는 접미사를 붙였다. 러시아인들은 “요쿠트” 대신 발음상 편한 “야쿠트”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시베리아에서 새로 생긴 혼혈족, 야쿠트인은 정착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 음식도 자기네 것인 양 내놓은 것을 보았다. 전통음식을 차려놓고 외국 손님들을 초청하였다. 그 음식 중에 일본식 김밥과 간장, 생강조림이 있었다. 야쿠트인은 간장과 생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통음식차림에 새로운 것을 슬쩍 끼워놓는 것에서 이 사람들의 탁월한 융통성을 볼 수 있다. 이런 야쿠트인들의 융통성을 살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은 많다.
    Premium Chosun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kangds@hufs.ac.kr

    草浮
    印萍

    야쿠트인이 시베리아의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유?
    ▲  김밥을 만들고 간장과 생강을 이용하는 야쿠트인
    들은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데 탁월한 적응력이 있다.
    력의 핵심에서 일하는 젊은 친구가 있다. 아버지가 타지크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를 타지크인이라고 차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그를 주변에서 부러워한다. 야쿠트인들 가운데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도 있다. 이목구비가 서양 사람처럼 생긴 사람도 있다. 주변에 할아버지,할머니 또는 아버지, 어머니 중 한쪽이 러시아,우크라이나,폴란드,그루지야,유대인인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바실리라는 젊은 친구와 가까워졌다. 이미 마흔이 넘었는데 혼자란다. 아이들은 없다. 부인은 스위스에 있다고 한다. 생활비는 누가 대느냐고 물었다. 미국에 있는 부모들이 보낸다고 하였다. 그들은 유대인이다. 이 친구도 아버지는 반쪽이 유대인이었다. 그럼 당신도 유대인 아니냐는 물음에 단호히 아니라고 한다. 이스라엘에 가서 교육도 받았다. 그럼에도 야쿠티야로 돌아와 야쿠트인으로서 사하공화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 모스크바 주재 중국대사를 야쿠츠크에서 만났다. 야쿠트인의 러시아어 발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 외교관은 중국의 원로 외교관으로 과거 소련 해체 직후 중-러시아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어도 유창하다. 중국의 원로 외교관은 러시아 연방 안의 다른 소수민족들이나 주변의 중앙아시아인들은 아무리 러시아어를 배워도 자기 고유의 악센트를 버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야쿠트인들에게서는 그런 악센트를 전혀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어에 관해선 모스크바의 러시아인들과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야쿠트인의 유연한 사고방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종교에 관해서도 야쿠트인들은 유연하다. 야쿠트인들은 종교가 뭐냐 묻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 그러나 시내엔 정교회 교회가 꽤 많다. 주요 국가 행사엔 정교회 신부가 꼭 초대된다. 그리고 축복을 받는다. 동시에 그들은 미신처럼 내려오는 많은 금기사항을 어기지 않는다.
    사냥터에 가면 먼저 사냥신에게 술잔을 바친다. 축제에선 불의 신에게 크무스를 바친다. 술자리에서 병이 비면 마지막 한 방울을 탁자 위에 뿌리며 3번 똑똑 두드린다. 이들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나의 이념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융통성을 볼 수 있다.
    ▲  야쿠티야 지역은 2014년 여름 52개국에서 400여 명의 교육, 행정, 언어 전문가들을 초청해 유네스코 국제회의 무리없이 진행했다.

    19세기 야쿠티야 지역을 관할하던 이르쿠츠크 총독은 야쿠트인의 적응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한겨울에 발가벗겨 돼지우리에 집어넣으면 다음해 돼지우리에서 큰 저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하공화국이 자치권을 얻은 지 20년이 넘었다. 1998년 야쿠츠크를 방문한 한국의 중학생이 큰 시골 마을 같다고 해 여기 사람들을 웃게 하였다. 15년 지난 지금의 야쿠츠크는 현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야쿠트인들의 개인소득은 러시아 평균보다 훨씬 높다. 대략 1만8000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경제적 구매력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 분위기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다. 개인적으로도 사람들이 부지런하다. 여기에 사하공화국은 자원의 보고이다. 주요 자원들의 개발은 연방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야쿠트인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연방정부와 줄 당기기를 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다이아몬드,석유 같은 자원을 연방이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야쿠트인들은 실속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이 러시아 연방 내의 다른 소수민족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을 시베리아의 유대인이라고 할 만하다.
    Premium Chosun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kangds@hufs.ac.kr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