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

15 시베리아 원주민 축치족 처녀들 러시아 군인과 결혼하는 이유?

浮萍草 2015. 7. 28. 09:27
    사하의 소수민족 에벤키

    ▲  에벤키족 가면탈
    벤족 얘기를 많이 했다. 사하에서 에벤족은 소수 중의 소수이다. 에벤족과 사촌쯤 되는 민족이 에벤키이다. 두 민족은 이름도 비슷하지만 언어,문화,풍습 등이 다 비슷하다. 예를들면, 우리말 ‘가지다’가 에벤키어로는‘가-미’이고 에벤어로는‘가-다이’이다. 우리말 ‘잡다’가 에벤키어로는 ‘자바-미’이고, 에벤어로는 ‘잡-다이’이다. 이 두 민족은 원래 하나로서 바이칼 부근에서 만주 쪽으로 이동하며 그곳의 원주민과 섞이면서 생긴 민족으로 보인다. 이들이 갈라진 것은 시베리아로 올라와 순록치기를 하면서이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어느 해 갑자기 순록이 전멸하였다. 일부는 바닷가로 이주하였다. 그들을 ‘라무트’라고 불렀다. 혁명 후 이들을 에벤이라고 부른다. 에벤키 족은 러시아 혁명 전까지 스스로 “퉁구스”라고 하였다. ‘동호’(東胡)에서 유래한 ‘퉁구’라는 말에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우스’가 붙어‘퉁구스’가 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동호’는 중국 사람들이 음차하여 붙인 이름일 것이다. 지금은 만주 지역에서 사는 네기달, 솔롱 등의 민족까지를 아우르는 통칭으로 퉁구스라는 용어가 쓰인다. 우리말에 ‘오랑캐’라는 단어가 있다. 만주 변방 민족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이에 해당하는 ‘우랑카이’라는 말이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알타이,투바 지역까지 이르는 시베리아 지역의 언어에서는 이 말이 보통 ‘용감한 무사’를 의미했다. 지금은 고어로서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고 한다. ‘우랑카이’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에벤키어나 에벤어에서 ‘오란’은 순록을 뜻한다. 여기에 ‘큰 사람’을 가리키는‘-카야’라는 접미사가 있다. 바로 ‘오란-카야’가 어원이 아닐까 한다. 본래 ‘순록을 잘 키우는 사람’이란 뜻의‘오란-카야’를 옛날 우리 조상은‘오랑캐’라고 부른 게 아닐까? 시베리아 언어들에서 ‘오란카야‘는 음성적으로 변화를 일으켜 ‘우랑카이’가 되었을 수 있다. 에벤키와 에벤보다 먼저 시베리아에 자리를 잡은 민족이 유카기르와 축치이다. 언어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냥 ‘범 아시아계’라고 분류한다. 유카기르인은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다. 대략 3000년에서 6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사하공화국의 동북부 지역과 마가단 주에 1500 명 정도가 남아있다. 축치인은 아시아 대륙의 동북단 끝에 있는 추코트 자치구의 원주민이다. 야쿠티야에는 400명 정도가 있다. 이들은 북동 지역 아시아에 사는 고대 민족 중 체격이 제일 크다. 기원전 1000년 경 고대 유목민이 오호츠크 해안에서 아시아 북단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카기르인과 에스키모인이 융합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  에벤키출판기념회전시된 책

    ▲  에벤키 학자 출판념회에서 에벤키 민속춤.

    2010년 여름 레나 강에서 만난 축치 여자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다. 그녀는 마가단 주의 아나디리라는 곳에서 왔다. 아나디리는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있는 조그만 도시이다. 군인들은 이곳에서 2년 의무 복무를 하고 제대를 한다. 군인들은 그 2년 동안 이곳 처녀들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이 여자의 가족도 그랬다. 엄마는 축치인, 아버지는 러시아인이다. 아버지는 제대 후 모스크바로 떠났다. 엄마는 아버지가 떠난 뒤 혼자 딸을 키웠다. 처녀가 된 이 딸도 국경수비대 출신의 군인과 결혼하였다. 그 군인은 떠나지 않았다. 아나디리에 남아 자동차 수리공으로 가족을 부양한다. 엄마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아마 엄마도 러시아인의 피를 받았을 것 같았다. 마음을 짠하게 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가계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축치여자예요. 축치 문화를 이어갈 거예요.” 노트북을 꺼내 가족사진과 아나디리 시 전경을 보여 주었다. 움막집과 낡은 벽돌집들이 늘어선 보잘 것 없는 작은 어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참으로 당당했다. 동부 시베리아에서 수수께끼 같은 민족은 돌간인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분명히 야쿠트어와 유사하다. 이 사람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은 야쿠트인과 잘 지내고 있다. 유독 돌간 사람들만 그렇지 않다.
    ▲  에벤족 대학생 티무르와 함께
    돌간 사람들은 주로 사하 공화국 북서 변방과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에 살고 있다. ‘ 돌간’이란 명칭은 17세기 초에 처음 나타났다. 야쿠티야 중심부 레나 강변에는 에벤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민족이 들어오자 북쪽으로 밀려났다. 북서쪽으로 이주하면서 우랄어족,케트어족들과 만나게 되었다. 오늘의 돌간인이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18세기 말-19세기 초였다. 이들의 문화는 퉁구스적인 것과 툰드라 지역적인 것을 다 가지고 있다. 1930년대까지 이들 돌간은 야쿠트와 구분되지 않았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구별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 소비에트 민족 복원정책 때문이었다. 행정적으로 이들 대부분은 사하공화국 서쪽의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강에 살고 있다. 에벤키,에벤,유카기르,축치,돌간족들이 언어는 다르다. 그러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정신문화는 샤머니즘으로 통한다. 에벤키인들에게 자연은 최고의 신이며 근원이었다. 불의 정령에 음식을 바치는 의식을 통해 자연을 숭배하였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윤회 사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나 짐승도 죽은 뒤 그 영혼이 새로운 모습으로 대지 위에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짐승도 반드시 땅에 묻어 주었다. 이들의 세계관은 공통으로 3개의 세계로 구성되었다. 상부,중부,하부로서 인간은 중부세계에 산다고 믿었다. 문화에는 분명히 우열이 없다. 이 소수민족들의 정신세계는 공통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씨족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것들은 아무리 값이 있어도 사라지고 만다. 모두 소멸의 기로에 놓인다. 손재주가 탁월한 축치인들. 그들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새로운 문명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다. 북해 연안의 도시 틱시에서 온 에벤족 대학생 티무르를 레나강변에서 만났다. 에벤어를 아느냐고 물었다. “몰라요. 없어지고 있잖아요!” 그에게 에벤어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가혹한 질문이 될 수 있다.
    Premium Chosun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kangd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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