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하 65도 야쿠티야 이야기

11 시베리아에도 안현수 열풍

浮萍草 2015. 6. 13. 09:49
    토의 땅, 사하공화국에서는 겨울을 어떻게 보낼까?
    겨우내 오후 4시면 어두워지는 기나긴 밤을 무얼하며 보낼까? 이곳에서는 9시가 넘어야 해를 빛을 볼 수 있다. 
    12월 수은주가 영하 40도 이상 내려가면 바깥세계는 완벽한 겨울 왕국이 된다.
    한국에서 동토의 겨울나기를 보여준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두꺼운 모피 코트, 털모자 샤프카, 운티라 불리는 부츠. 원주민은 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고도 추위에 사는 게 힘들어 보인다. 
    한국 TV는 따뜻한 나라에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한껏 보여준다. 
    정말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 시베리아에 살지 않는 우리는 행복한 것일까?
    15년 전 어느 겨울, 아마 12월이 아니었을까?
    오전 7시, 차가운 백설 위를 수은등 불빛만이 수줍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길을 나섰다. 
    시내 중심가를 빠져나오는 순간 일행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저기 좀 봐요!” 남자와 여자가 발가벗은 채 양동이로 물을 온몸에 쏟아 부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몸이 얼어붙었다. “저럴 수가!”
    러시아에선 얼음을 깨고 호수에 들어가는 행사가 지역마다 있다. 
    모스크바 근교 또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 지방 같은 곳에선 연중 겨울 행사이다. 
    그런 지방은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영하 30도를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야쿠츠크와 같은 곳과 비교가 안 된다.
    야쿠츠크의 겨울 생활은 참으로 단조롭게 보인다. 출근길에서나 퇴근 길에서나 햇빛은 볼 수 없다. 
    출근하는 오전 9시, 아직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후 6시, 이미 밤길을 가야 하는 퇴근길이 종종걸음이 될 수밖에 없다. 
    빨리 가서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여자들의 마음은 더욱 바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도시엔 영화관이나 콘서트홀이 꽤 많다. 
    이미 1990년대에도 발레단과 오케스트라, 연극 전용 극장이 있었다.
    이런 문화 시설을 갖춘 곳은 극동과 시베리아에서 이곳이 유일하였다. 
    1990년대에 지방도시의 연극단이 우리의 대종상에 해당하는 황금가면상을 받은 곳은 야쿠츠크가 유일하였다. 
    야쿠츠크의 도시 규모는 1990년대 20만, 지금은 30만 정도이다. 
    작은 도시가 50~60만 정도의 도시보다도 더 많은 문화 시설과 깊은 전통이 있는 것은 긴 겨울 덕분인지도 모른다.
    야쿠츠크 쇼트트랙전용 경기장 엘레이 보오투르 전경(위)과 연습중인 야쿠티야의 쇼트트랙 선수들.

    2000년대에 들어서 체육 시설이 많이 지어졌다. 특히 수영장, 실내 축구장, 육상장이 들어섰다. 여름엔 따가운 햇볕과 모기 때문에 야외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 겨울엔 역시 추위 때문에 야외 활동이 쉽지 않다. 겨울에도 수영 같은 실내 운동이 인기를 끈다. 한겨울이 지나 3월이 되면 영하 30도를 웃돈다. 영하 50도를 견디다 바람이 없는 영하 30도가 되면 포근한 봄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한반도를 강타하는 강추위 영하 10도를 청양 고추 같다 한다면 시베리아의 3월은 맵지 않은 고추 같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스키를 메고 나와 눈 덮인 들판을 달리는 컨트리 스키를 즐긴다. 곳곳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설치되어 스케이트를 탄다. 좀 더 익스트림을 원하는 사람들은 더 북쪽으로 가서 얼음낚시를 한다. 아니면 산양이나 멧닭, 큰 사슴 같은 야생 동물 사냥에 나선다. 야쿠츠크 남자들에게 사냥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이것은 삶의 의미이며, 남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최근 야쿠츠크에는 새로운 겨울 스포츠가 하나 늘었다. 쇼트트랙이다. 스케이트를 탄다 하면 롱스케이트를 타는 스피드 스케이팅 정도였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안현수)이 러시아에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안겼다. 전 러시아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 열광은 야쿠츠크도 비켜가지 않았다. 영웅 “빅토르 안 따라 하기“는 이곳에서도 젊은 엄마들을 자극하였다. 쇼트트랙 전용 트랙이 생겼다. 쇼트트랙 코치가 초청되었다. 안현수는 러시아에서 “빅토르 안”이라는 영웅으로 탄생했다. 안현수가 조국을 떠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조국에 많은 것을 주었다. 안현수로 인해 러시아인 모두가 한국의 힘을 알게 했다. 쇼트트랙장에 고사리손을 끌고 온 엄마는 빅토르 안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잘 안다. 이들이 한국을 어찌 생각할지 굳이 궁금해하거나 물어볼 필요가 없다.
    Premium Chosun        강덕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 kangds@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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