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王의 병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광해군 - 火病

浮萍草 2015. 6. 7. 16:58
    ‘서자 콤플렉스’ 스트레스로 고통
    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병명이 서양에 수출된 것이 있는데,그 중의 하나가 바로 화병(火病)이다. 사실 예전에 서양의학에서는 화병을 정식병명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 몸에 불이 나는 병이니 화병이라는 병명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임상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보니 드디어 서양의학에서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예로 지난 1996년도에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는 화병을 ‘문화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하게 되었는데 영어로도 ‘Fire- disease’가 아니라 화병 발음 그대로 ‘Hwabyung’이라고 불러서, 아예 고유명사화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 중에 실제 이러한 화병을 앓았다고‘왕조실록’에 기록된 왕은,숙종과 광해군 등이다. 이 중에서 숙종의 경우에는‘숙종실록 보궐정오’ 43년 7월 24일과 25일의 기록에‘왕에게 화병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왕이 스스로 자신의 병증에 대해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이와 달리 자신이 직접 화병이 있다고 여러 번 밝히고 있다. 그 첫 번째 언급은 광해 12년 10월 18일의 기록에 나오는데 자신에게“화병이 있는데도 쉬지 못하고 겨우 겨우 힘들게 국사를 보고 있으니,중국 변경에서 들어오는 경보나 거둥에 관계되는 일만 보고하라”고 비밀리에 전교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어서 13년 1월 17일에는 도승지의 사직서를 반려하면서 자신에게 화병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15년 1월 22일에는 종기와 두통 증세를 말하면서 화병 때문에 잘 낫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기기 한 달 전인 광해 15년 2월 19일에는 자신의 병증을 허증(虛症)으로 잘못 진단한 어의들에게 자신의 병은 화병이기에 눈을 감고 조용히 조섭한 뒤에야 회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당시 광해군이 매우 분노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진뿐만 아니라 자신의 병세를 신하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친 어의들을 강하게 징계한다. 더불어“이후 경들은 다시 와서 문안하지 말고 나의 병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침과 약을 모두 정지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야말로 화병이 더욱 심해졌던 것이다. 실제 열흘 뒤인 29일에는“국가에 일이 많아서 한시도 조섭할 수 없고 화병의 증세가 날로 심해져 회복될 기한이 없으니 우선 문안하는 일을 정지하여 나로 하여금 조용히 조섭할 수 있게 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광해군은 이러한 기록이 있은 2주 후인 3월 12일에 나라를 빼앗긴다. 사실 ‘서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아버지 선조와의 불화 때문에 세자 책봉도 늦게 이루어졌으며,그 자리마저도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에게 뺏길 위기였다가 간신히 오른 왕의 자리였기 때문에 스트레스의 강도가 매우 심했을 것이다. 실제 왕위에 오른 뒤에도 많은 적대적인 세력들과 싸워야 했기에 광해군의 화병은 일면 이해할 만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병은 다른 말로 울화(鬱火)병이라고 얘기한다. 즉 쌓이고 쌓여서 누적된 화병이라는 뜻이다.
    Munhwa ☜       장동민 하늘땅한의원장 www.oksky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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