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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캄보디아 ④ 힌두교를 품은 불교

浮萍草 2015. 3. 16. 09:28
    코르와트의 입구에 들어서면 황색가사를 걸친 거대한 부처님이 우뚝 서서 우리를 맞아준다. 
    앙코르유적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이들과 교류하는 부처님이다. 제단에는 성대한 공양물이 차려져 있고 중생을 내려다보며 은은하게 미소 짓는 부처님은 네 개의 
    팔을 지녔다. 
    힌두교 3대 신 가운데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으로 자리한 부처님이니 불교와 힌두교가 결합되어 있는 앙코르유적의 상징적 존재라 할 만하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불교신자는 95%에 이르고, 힌두교는 소수종교화 되어 사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서도 현지가이드가 “부모님은 힌두교를 믿는다”고 했듯이 힌두교의 신들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며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불교와 힌두교는 하나의 믿음으로 천년의 세월을 의지해온 신앙인 것이다.
    9세기 초에 크메르제국을 연 자야바르만2세는 힌두교의 기반 위에 사원과 왕궁을 짓기 시작했고 그 뒤로 수백 년에 걸쳐 재위 왕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힌두교와
     불교를 넘나들었다. 
    앙코르유적도 이들 두 종교에 기반을 둔 산물이며, 
    공존의 흔적도 배척의 흔적도 나란히 남아있다. 이를테면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를 들어내고 불상을 모신 곳이 있는가 하면 본래거처를 내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전쟁 때 소실된 불상도 있다.
    믿음이 달랐기에 성상(聖像)을 바꾸면서도 선대와 백성들이 의지한 또 다른 신앙을 크게 배척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특히 이 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야바르만 7세는 12세기에 많은 사원을 짓고 불교를 중흥시키면서도 힌두교를 포용한 왕이었다. 
    앙코르와트가 힌두교의 신전이라면, 그가 지은 앙코르톰은 거대한 왕궁이었는데 그 중심에 바이욘 사원을 세웠다.
    바이욘에는 크메르인의 얼굴을 그대로 닮아 ‘앙코르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사면상이 있다. 
    미소의 주인공은 관음보살이자 자야바르만 7세라 한다. 
    사면상이 조각된 수십 개 탑의 네 면에 거대한 얼굴을 새겼으니 시선을 두는 곳마다 무수한 관음보살이 미소 짓는다. 
    사원에 들어선 이들에게 붓다의 세계에 와있는 경이로움을 주고자 했다면 천년에 가까운 시간을 품은 돌의 연륜과 함께 그 감동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커질 법하다.
    3층의 중앙 성소와 열여섯의 공간마다 불상을 모시고 56개의 탑 사면마다 관음보살을 새긴 불교사원이지만,왕은 조성 당시부터 힌두교를 적극 수용하였다. 
    회랑의 벽에는 거대한 힌두신화가 새겨져 있고 기둥마다 압사라가 춤을 춘다. 
    그런가하면 앙코르톰을 들어서는 남문은 힌두신화의 유해교반(乳海攪拌) 내용을 담아,다리 양쪽에 선신과 악신이 도열하여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나가를 안은 채 우유
    바다를 휘젓고 있다.
    힌두교의 3대 신이 창조와 유지와 파괴의 신이듯 우주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민간신앙으로 전승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바를 상징하는‘링가’는 남근이고,사각의 돌에 구멍을 뚫은 여근 ‘요니’와 합쳐지면서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하게 된다. 
    사원에는 링가를 들어낸 요니 흔적만 남았지만, 민간신앙의 몸짓이 자유로운 곳에는 합체된 링가가 남아있다. 
    사람들은 링가 위에 물을 붓고 흘러내리는 물을 몸에 바르며 기도한다. 
    수많은 민간의 신을 호법신이자 자연의 이치로 품는 불교의 포용성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 불교신문 Vol 3087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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