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53〉 캄보디아 ⑤

浮萍草 2015. 3. 23. 09:47
    자연과 문명, 충돌과 공존
    
    "원주민들은 미신적 두려움 때문에 정글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로인해 자연의 생명이 이처럼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1860년 1월의 어느 날 밤 프랑스 탐험가 앙리무오는 밀림에 뒤덮인 앙코르유적지 탐사를 마치고나서 똔레삽 호수 근처에 횃불을 밝혀놓고 흥분과 감동으로 자신이 
    본 것을 써내려갔다.
    한때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지배했던 크메르제국은 15세기에 이르러 급격히 쇠퇴했고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기면서 앙코르는 크메르인들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진 
    채 4~50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앙리무오가 밟기 전까지 이곳이 인간과 교류가 끊긴 폐쇄된 밀림으로 존재한 것만은 아니었다. 
    각지의 탐험가들이 다녀가며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허물어진 사원 한쪽에는 여전히 승려들이 머물며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캄보디아인들에게 앙코르는 무너진 옛 왕조와 자연이 하나로 뒤엉켜 폐허화된 금기의 성역과 같았다. 
    ‘유령이 돌아다니는 저주가 내린 곳’으로 두려워해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고 탐험가들도 단편적 기록만 남겼을 따름이다. 
    본격적인 탐사를 마친 앙리무어가 이듬해 라오스에서 열병으로 숨을 거둔 뒤 그가 남긴 치밀하고 놀라운 기록은 책으로 발간되기에 이른다. 
    수백 년간 열대밀림에 뒤덮여 있던 앙코르왕국이 세계를 향해 초대장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복원은 이어지고 있으나 자연과 뒤엉킨 폐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목재는 수명이 짧다하여 불멸의 재료인 돌로 세운 앙코르이다. 
    그러나 거대한 열대수목의 뿌리들이 연체동물처럼 사원을 휘감고 돌 사이를 파고들어 나무의 포로가 되어버린 석조건물의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열대밀림을 헤치며 400㎢에 걸친 앙코르유적지의 폐허를 접했던 앙리무오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발걸음마다 몰락한 제국과 사라진 문명이 남긴 유적들과 만난다. 
    그리스로마 예술이 남긴 모든 것을 압도한다. 
    감탄과 존경심에 사로잡혀 말을 잊고 정신을 잃은 채 점점 더 커져만 가는 황홀과 경이로움으로 걷고 또 걸었다. 
    …파괴에 전념한 듯 시간은 이 모든 유물을 망가뜨려 놓았다. 
    야생동물의 소굴이 되어버린 우거진 초목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으니 지진으로도 일으킬 수 없는 폐허이다.”
    그는 앙코르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폐허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듯하다. 
    12세기에 자야브라만7세가 어머니에게 헌정한 왕실사원 ‘따 프롬’은 자연과 문명이 충돌하며 공존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대한 스펑나무 뿌리가 사원의 벽과 지붕을 뚫고 누르며 비튼다. 수백 년 전 인간이 떠난 신전의 돌 틈에 떨어진 한 톨의 씨가,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왕성한 
    생명력으로 거목이 되어 사원을 잠식한 것이다.
    나무는 조금씩 사원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제거하면 건물이 더 빨리 허물어지기에 성장억제제를 투여하고 있다. 
    나무와 사원은 서로를 파괴하면서 보호해주는 모순의 관계인 것이다. 
    비문에는 이곳에 1만2천의 사람이 살았고, 854개의 석조ㆍ벽돌 주택에 5천의 관리자 615명의 무희가 있었다고 적었다. 
    앙코르는 자연과 시간 앞에 덧없는 문명을 생생히 보여주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장이기도 하다.
    
    ☞ 불교신문 Vol 3089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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