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7 중년남성들이 음식점에서 절대 안 먹는 음식은?

浮萍草 2015. 2. 27. 06:00
    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필자가 여성가족부 대변인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모 언론사의 중견간부와 점심을 함께 먹을 기회가 있었다. 
    식사 중에 호박전과 동그랑땡 같은 전이 나왔다. 
    갑자기 이 분이 “나는 전을 안 먹어요”라고 말했다. 
    “난 우리 음식에 전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한술 더 뜬다.
    순간 나는 그가 전이 맛이 없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는 중년 남자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부인은 전을 몇 시간씩 쪼그리고 앉아서 부쳐야한다. 
    이로 인해서 명절을 더욱 힘들어하고 부부간에 갈등의 원인이라는 이야기였다. 
    전을 만드는데 왜 이리 손이 많이 가는지 전에 대한 원망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전은 만들 때는 힘들지만 식으면 안 먹어서 남게 되고 냉동실에 몇 달 있다가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제사상에 전은 꼭 올려야 하는 중요 음식이다. 
    그분은 직장 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로 직원들을 다잡아 일을 시키는 능력이 출중한 상사였는데“전이 싫어요”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호랑이 같은 분도 가정 내 가사노동으로 인한 부부 갈등이 있다니 가사노동은 어느 집이나 공통의 과제임을 느낀다. 
    명절이 두려운 사람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얼른 물었다. 
    “아니,그러면 같이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그러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고 제가 어떻게요. 우선 제 어머니가 무척 싫어하세요. 
    집사람을 도와주고 싶어도 못해요.” 
    아마도 그 분은 가사 일을 하면 남자로서의 체면이 손상될까 싫어하는 어머니와 요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인 사이에서 공연히 맛있는 전을 싫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은 아마도 대한민국 대다수의 남편들이 명절 때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일 것이다. 
    도와주고 싶어도 남자로서의 체면이 깎일까 주저되고 부모님이 싫어하시니 몰래 도와야한다.
    전업주부든 맞벌이주부든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일로 남아있다. 
    실제 조사에서도 맞벌이주부는 남편보다 5배 이상 전업주부는 거의 10배 정도 가사노동 시간이 많다고 한다. 
    우리 집 남편은 그래도 맞벌이하는 마누라 때문에 가사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 
    남편은 나보다도 손재주가 많아 바느질,다림질도 잘한다. 
    그런데 다림질 할 때는 누가 볼까 창피해서 꼭 문을 닫고 한다. 
    신혼 초 시어머님이 남편의 다림질을 우연히 보셨다. 
    “너 왜 내 아들한테 여자 일을 시키니? 
    그러려고 아들 키운 줄 아니?” 
    호되게 야단치셨다. 
    그 이후에는 남편은 아예 문을 잠그고 다림질을 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어머님은 많이 달라지셨다. 
    서로 돕고 살라고 격려해주신다.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사는 더 이상 아내를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내 일이어야 한다. 
    남편들에게도 가사와 육아의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한다. 
    그래야 전이 먹기 싫다고 하는 남편, 문을 잠그고 다림질하는 남편들이 없어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기업인인 셰릴 샌드버그도 여성이 바깥일에서 성공하려면 배우자를 진정한 동반자로 만들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무리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고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도와준다고 해도 남편이 보내주는 지지와 도움은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고무적인 것은 가사와 육아를 돕는 남편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여성가족부에 근무하는 남성 직원은 절반이 조금 안 된다. 
    전체의 35% 정도이다. 다들 일도 열심히 하고 성실한데,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직장 영향도 있겠지만 대부분 가정적이어서 육아나 가사를 많이 도와주고 있고 이를 자랑스레 밝히고 있다. 
    K과장은 부인도 공무원인 맞벌이 부부이다. 
    서로 바쁘다보니 가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집에서 청소가 제 전담업무에요.” 
    그는 가사를 내 일로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다른 남편들과는 많이 달랐다.
    나도 나중 우리 딸이 결혼할 배우자를 데리고 오면 꼭 물어볼 거다. 
    “가사는 누구의 일일까요?” 내가 예상하는 백점 대답은“우리의 일이에요”이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도 만들어야겠지만 가정 내의 작은 변화가 우리사회의 전체 변화를 이끄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남편들이 가사가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기는 날이 언제나 올까?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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