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6 "우리과 여교수는 저 하나면 돼요" 하는 이상한 여왕벌 교수

浮萍草 2015. 2. 26. 06:00
    40년만에 처음으로 여교수 채용한 이야기
    2003년 12월 22일 열린 '여교수의 참여적 현실' 세미나.조선일보DB
    난 연말 남편이 싱글벙글하며 퇴근을 했다. “학교에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했더니 남편이 재직 중인 학과에 처음으로 여교수를 신임교수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학과 창설 40년 만이다. 그 학과는 과거에는 여학생이 드물었으나 최근에 많이 늘어나 지금은 정원의 약 40%나 된다. 하지만 교수는 남자만 8명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여성교수를 뽑았다고 자랑하는 남편의 표정은 의기양양하다. 필자가 되물었다. “그럼 40년이나 흐를 동안 왜 여자 교수들을 안 뽑았어요?” 대답은 간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들의 수가 그동안 절대적으로 작았으므로 뽑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 지원자가 있어도 여교수를 선발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들이 있었다. 많은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남녀 편중이 상당히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남성 중심인 대학사회에서 여교수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여성들이 개인적이고 조직생활을 잘 못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조건이면 남성을 뽑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한다. 여교수 비율은 2005년에는 16.1%였는데 2013년에는 20.8%로 서서히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 명도 없는 학과들이 수두룩하다. 여성 교수를 선발했던 학과의 교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견해가 나뉜다. 여성교수가 임용되면서 학과 분위기가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대세이다. 특히 여학생들이 터놓고 학업이나 인생에 대한 고민을 상담할 수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평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여교수가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고 힘든 보직은 안 맡으려고 한다는 등 볼멘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성들은 숫자가 많으니 이런저런 상황들이 묻혀갈 수 있는데 여성은 소수이다 보니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인구에 회자하기가 쉽다. 여성도 조직생활 잘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을 터인데 한두 사람의 모습만 보고 전체를 정형화하는 것은 문제이다. 여성이 성공하려면 남성들보다 훨씬 더 좋은 업적과 실력을 갖추어야 하고 인성도 필요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슈퍼 우먼이 되어야 하나보다. 남성들이 주도하던 분야에도 여성들이 좋은 실력으로 척척 임용되는 걸 보니 평생 여성정책을 담당한 필자도 흐뭇하다. 이 이야기를 다른 모임에 가서 했더니 다양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진다. 평소 우리나라 대학에서 여교수를 많이 뽑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여교수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과에서 여교수를 또 선발하려고 했더니 ”우리 과는 나 하나면 충분해요” 라고 하면서 여교수 뽑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한다. 여왕벌심리일까? 일부 여성들은 혼자서만 여왕벌이 되고 싶어서인지 후배들을 키우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여왕벌이 사다리를 차 버리는 것과 똑같다. 자기만 사다리를 올라가고 동료나 후배들이 못 올라가게 사다리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먼저 진출한 여왕벌이 사다리차기까지 하면 여성교수들 자신은 계속 소수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작년 연말 여성공학인 협회 세미나에서 셜리 위-추이 한국IBM 사장의 강연을 들었다. 셜리 위-추이 사장은 IBM은 인재의 다양성이 최고의 인재채용 및 조직의 혁신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신념을 갖고 회사의 방침으로 여성의 다양성(Women Diversity)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여성 사회참여의 필요성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논리이다. 최초로 입사한 여성들이 그 조직에서 잘해야만 다양성이 조직의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옳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편견이나 차별이 있을수록 여성들의 노력과 분발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도 소수자인 여성들이 더 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되려면 이번에 40년 만에 채용된 여교수가 앞으로 우리 학과에는“나 혼자면 족해요”라고 주장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여성들이 도와주고 끌어주면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앞당겨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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