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4 성희롱예방교육 간다고 했더니 중년남성들 한결같이 하는 말이…

浮萍草 2015. 2. 24. 06:30
    희롱예방교육 간다고 했더니 싫어요, 
    안돼요를 가르치라는 중년남성들. 
    그러나 싫어요를 말할 겨를도 없는 상황들을 이해는 하고 있을까?
    1970년대만 해도 서울 길거리에는 육교가 많았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차가 많은 건널목을 건너는 것보다 교통사고의 위험이 없는 육교가 편했다. 
    학교에서도 되도록 육교로 건너라고 권장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로 기억된다. 
    때마침 혼자서 청량리역 근처의 육교 위를 걷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한 남자 고등학생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내 가슴을 꽉 움켜쥐더니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다. 
    무섭고 아프기도 했지만 놀라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 기분 나쁜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어린 아이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왜 기분이 나빴을까? 무서워서도 아파서도, 놀라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는 데 더 속이 상했다. 
    번개같이 짧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이라 앗 소리는커녕 한마디 말도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당한 무기력한 내가 바보 같았다. 
    아마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많은 피해자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이 사건을 다 큰 딸들에게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놀라면서 의견을 내 놓았다.
    “엄마, 그건 성희롱이 아니라 성추행이야, 성추행.”
    성희롱과 달리 성추행은 성폭력의 한 형태이다.
    2013년 7월 15일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본청과 사업소 4급 이상 간부 240여명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으며 멋쩍은 듯 얼굴을 가리거나 웃음을 짓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간부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해왔다.조선일보DB

    한마디 또 한다. “왜 아침 일찍 육교를 혼자 갔어요?” 아침 일찍 안 갔으면 괜찮았을 거 아냐? 엄마가 안타까워하는 말이겠지만 일찍 갔다고 나를 슬쩍 나무란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나는 혼자서는 육교를 건널 수가 없었다. 지금은 육교가 거의 철거되어서 다행이지 평생 육교 트라우마를 앓고 살 뻔했다. 요즈음 강의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온다. 시간도 여유가 있고 30년 경험과 여성정책,가족정책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수락하고 있다. 여성정책, 나아가서 성희롱예방교육, 가정폭력 예방,리더십 교육 등 요청 오는 강의의 종류도 다양하다. 작년에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전문 강사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과거 공직 남성 동료가 한 마디씩 한다. “이 차관, 다른 강의 다 나가도 성희롱예방교육은 절대 하지 마세요” 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강의를 갔다 오면 교육생들의 냉담함에 상처받을 것이 걱정돼서 하는 얘기란다. 남자들이 성희롱예방교육을 정말 싫어한다고. 너 실컷 떠들어보라 하면서 졸고 졸지 않으면 팔짱 끼고 앉아있는 모습을 직장교육에서 많이 봤기 때문이란다. 왜 그럴까? 유난히 성희롱 예방교육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간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마음이 꽁꽁 닫혀 버린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교육하러 갈 거예요” 했더니 한마디씩 훈수를 둔다. 대부분 “여성들에게 싫어요, 안돼요를 가르쳐라.” 라고 강조한다. 여성들이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니 좋아하는 줄로 착각하고 계속 그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싫어요, 안돼요”를 외칠 수가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을 남자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 나도 40년 전 육교 위에서 그랬다. “싫어요”를 가르치라는 남성들이 줄지 않는 한 성희롱 사건들은 줄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몇 달 전 신촌에 있는 유명사립대에서 성희롱예방교육요청이 들어왔다. 필자로서는 성희롱예방교육 첫 강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들의 안돼요 하라는 남성들의 요청과 달리 비정규직,아동청소년 장애인 등 안돼요를 말하기도 어렵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50대 남성들의 우려와 달리 20대 초반의 젊은 학생들은 진지하게 교육에 참여하였다. 초보강사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았다. 교육받은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한 학생이 답한다. “안돼요 싫어요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요.” 한다. 최근 언론에서 성희롱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혹시 내가 교육을 한 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하고 얼른 학교이름을 보게 된다. 아직 아무런 사건보고가 안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생각난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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