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3 집에서 소외돼 강아지와 대작하는 우리시대 아버지들을 어쩌나…

浮萍草 2015. 2. 23. 06:00
    지난해 추석 연휴, 서울역에서 한 귀성객이 강아지를 안고 가고 있다. /남강호 기자

    지난 대선 때 한 유권자가 부산의 한 투표소에
    강아지을 안고 나온 모습.
    이 미국대학원을 다니는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기말고사 중에 있는 딸과 카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 나 잠깐 강아지 좀 만지고 올게. 지금 안가면 못 만져” 하더란다. “아니 학교기숙사에 갑자기 강아지가 어디서 나서 강아지를 만지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기말고사기간 중에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치료견 (therapy dog : 치료용 강아지)을 준비해둔다 고 한다. 치료견을 만나는 시간(puppy time)을 학교 신문에 학교소식으로 알려준다는 것이다. 알아 보니 미국 내 많은 학교들이 학기말 시험기간 중에 치료견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하도 많은 학생들이 만지니 강아지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룰이 있다. 손등으로 만지게 하고 만지는 시간도 50분으로 한정해 번갈아 쉬게 한단다. 엄마가 딸에게 물었다. ”강아지 만지고 나니 스트레스 좀 풀리니?” “응,강아지 보니까 마음이 편안해 지네.” 단 50분이지만 수많은 낯선 학생들이 와서 머리 쓰다듬고 만지니 강아지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도 별도로 치료견으로서의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짖지 않고 귀여운 얼굴로 앉아 있는 훈련이다. 동물 학대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얼마나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강아지 치료까지 등장하나 싶다. 생활이 바빠지고 삶이 삭막해지다 보니 동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감의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잘 아는 대기업의 50대 CEO 한 분은 반려동물을 술친구 삼아 지낸다. 세상살이가 힘이 들면 강아지와 대작한다. 강아지를 상 앞에 그냥 앉혀놓고 마치 친구처럼 힘들고 고달픈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놓는단다. 강아지에게 “너도 한잔 먹을래” 하면서 입에다 술잔만 갖다 대고“넌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묻기도 한다.
    강아지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속이 시원하단다. 강아지와 대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일지 모른다. 언젠가 그에게 “가족은 어디다 두고 강아지와 술을 먹느냐”고 물었다. “마누라에게 얘기하면 ‘그런 거 가지고 쪼잔하게 왜 그러냐?’라는 핀잔만 듣기 일쑤이고,자식들은 다 크고 바빠서 만나기도 어렵고 얘기를 해도 ‘아빠 또 시작이야’ 하는 표정이고 그래서 대화가 쉽지 않아요.” 지난해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실태조사를 보니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가장 큰 걱정거리로 남자는'가족의 처지'를 여자는'죽기 전까지의 고통'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죽기 직전에도 가족을 떠올리는 아버지,가장(家長)으로서의 숙명적인 짐을 그들은 평생 안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가족 간의 대화는 적다. 2010년 가족통계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경우 아버지와 대화가 부족한 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5.4%를 차지해 어머니보다 세 배 가까이 많았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문제라고 할 테지만 정이 그리워 반려동물을 벗삼는 아버지들이 있는 걸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 간에 진솔한 대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족 간에 대화하는 방법을 미처 배우지 못하면 점점 어색해지고 쑥스러워서 영영 못하게 된다. 스스로 잘 안되면 도움을 받아서라도 해야 한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 가면 가족캠프나 가족교육프로그램이 있다. 전국에 130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가족들과 대화하며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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