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0 아들의 게임중독 고치러 필리핀 외딴 섬으로 살러 간 한 아버지 이야기

浮萍草 2015. 2. 13. 06:00
    한 게임 장면. 잔인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아이도 내게 벅찰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게 아이의 게임 중독인 것 같다. 예전부터 가족끼리 잘 아는 사립대학 교수가 있었다. 몇 년 전, 그가 한동안 연락도 없고 보이지 않았다. 소식이 궁금했는데 우연히 회의에서 만났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그는 필리핀 외진 섬에 가서 살다 왔다고 했다. 무슨 일로 다른 나라 외진 섬까지 갔다 왔는지 궁금해 물었지만 그는 난처한 듯 쉽사리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한참 뜸을 들이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심각할 정도로 게임중독에 빠졌는데 온 가족이 나서서 별의별 묘안을 다 써도 게임중독에서 아들을 벗어나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단다. 그래서 이 아빠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한국을 아예 떠나 필리핀의 오지로 이사를 갔다. 인터넷을 쓸 수 없는 고립된 오지에서 1 년을 살았던 것이다. 아들은 인터넷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게임을 잊게 되더란다. 그렇게 1년을 살다보니 자연 속에서 새로운 할 일을 찾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았고 다행히 치유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게임을 못하게 하니 가정이 지옥처럼 변했다”고 고백했다. 그 교수는 아들 때문에 게임중독이 심각한 청소년 문제임을 깨닫고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 등 관계기관을 찾아 다니며 보호정책을 도입해줄 것을 건의하고 호소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답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10년쯤 지나서야 겨우 입법화되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게임중독치료캠프에서 만난 엄마들의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다양한 엄마들의 사연들이 나왔다. 출근할 때 아이가 게임을 못하게 큰 PC를 차에 싣고 직장에 출근했다는 엄마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자주 다투게 되고 생활이 엉망이 되어 결국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단다.
    아들이 게임을 끊게 하기 위해 아예 시골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살았다는 엄마도 있었다. 한 엄마는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아들 둘을 키웠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모두 심각한 게임 중독에 빠져 고생한 얘기를 하며 눈물을 찍어냈다.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한 달에 100여만원을 받고 일하던 엄마였다. 그래도 다행히 아들이 상담을 받고 치료캠프를 다니면서 많이 좋아져 학교로 돌아갔다고 한다. 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11.7%로 약 72만 명에 이른다. 전년보다 10% 증가한 것이고, 성인의 2배나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중학생, 맞벌이 가정과 한 부모 가정의 중독률이 훨씬 더 높다. 이런 실태에 비해 치료시스템은 엄청 미약하다. 치료프로그램이라야 11박 12일에 불과해서 치료효과는 수료 직후에만 반짝한다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 드디어 올해 여성가족부에서 전라북도 무주에 상설인터넷치료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폐교를 활용하여 만든 것이다. 게임업계에서 게임도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을 규제한다는 비판이 나와 현직에 있을 때 애니팡 게임을 한번 해본 적이 있다.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지하철만 타면 애니팡 게임을 했는데 나중에는 어깨가 아플 정도였다. 중독성이 매우 심했다. 딸들이 웃으면서“우리 엄마야말로 게임중독”이라고 놀렸다. 내 힘으로는 못 끊을 것 같아서 우리 딸에게 프로그램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기억이 난다. 한 달 정도의 경험이지만 잊히지 않는다. 재미있으니 자꾸 하고 싶고 더 하면 더 잘할 것 같아 계속하게 되는, 스스로 끊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었다. 보호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보호지만 게임 업계 입장에서 보면 강력한 규제이다. 두 축의 균형이 필요하다. 게임업계의 성장과 청소년보호가 함께 갈 수 있는 묘안은 없는지 궁금하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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