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9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나, 나처럼 살기 싫다는 딸…언제까지 대물림해야 하나

浮萍草 2015. 2. 12. 06:00
    신달자의 에세이 '엄마와 딸'의 표지.
    “엄마, 나 학교 졸업하면 뭘 할까?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우리 딸이 한 말이다. 큰 딸도 그러더니 둘째 딸도 그 모양이다. 기가 막힌다. 대학 졸업 할 때까지 진로에 대해 생각을 안했다니 한숨만 나온다. 모녀의 대화를 듣던 아빠가 거든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 그래.” “정 할 게 없으면 엄마처럼 공무원이나 하렴.” 한마디 툭 던졌더니 야멸찬 반응이 돌아온다. “난 엄마처럼 살기 싫어!” 30년 공직 생활을 한 엄마의 삶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단다. 그때 딸의 표정, 말 모두 기억에 생생하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어렵게 자식들을 키우던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대한민국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도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사셨다. 난 그런 엄마의 삶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내 딸들로부터 똑 같은 말을 들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내 딸의 말은 엄마처럼 스트레스에 절어 긴 시간 일하는 직장에 매여서 살기 싫다는 뜻이다. 거의 매일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는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가 어렸을 때 했던 단골 질문이“엄마 행복해?”였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2116시간이다. OECD 평균근로시간(1652 시간)보다 길고 연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인 독일(1330시간)보다 60% 이상 오래 일한다. 그런데 시간당 생산성은 28위로 OECD국가 중에서 거의 바닥 수준이다. 우리세대는 그걸 감내했다. 직장 잡고 일 열심히 하면 행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그게 아니다. 취업난 속에서도 장시간 일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젊은이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젊은 세대들은 자기개발과 삶의 질에도 관심이 많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여성을 공채로 채용하는 대기업은 거의 없었다. 지원 자격이 군필자로 한정되어 있어 입사원서 낼 기회조차 못 얻었다.
    취직하는 길은 시험에 합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공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문이 열려 있었다. 이것이 내가 공직에 들어온 주요 이유였다. 그럼 지금은? 그 사이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아직 여성에겐 힘든 점이 많은 게 현실이다. 몇 년 전 가을, 유명 신문사 소속의 여성가족부 출입기자가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는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하늘의 별따기처럼 입사하기 어려운 신문사였고 거의 20년 일한 베테랑 기자였는데 그만둔다니 말리고 싶었다. 아까웠다. 언론사는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아 일하는 엄마들에겐 버티기 어려운 직장인 것 같았다. 직장 생활이 힘든 건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여성가족부 직원의 주례를 섰다. 신랑,신부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해 줄 약속이 뭐냐고 물었다. 신랑의 약속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저녁 먹어주기였다. 신랑은 그 약속도 지키지 못 할 것 같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저녁 한 끼 먹기를 희망해야 하는 우리 현실.이 신혼부부의 걱정은 바로 한국 직장인들이 갖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대로 딸들이 엄마처럼 살기 싫다니 심각한 문제다. 언제나 엄마처럼 살고 싶은 딸들이 나오는 세상이 될까? 한국의 직장문화는 언제나 바뀔까? 젊은 세대들에게 언제까지 이런 관행을 물려줄 것인가? 미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최근에 만난 한 CEO에게서 희망을 봤다. 철강회사 등 몇 개 기업을 운영하는 그는 엄마 사원을 위해 유연근무제를 도입했고 엄마 사원들이 자녀들의 학교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직원들 만족도가 올라가고 조직의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기업 특히 대기업의 CEO가 다 이 분과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