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8 부부 강간죄 도입 필요성 역설하다 물러난 여성부 장관 이야기

浮萍草 2015. 2. 11. 06:00
    작년 5월 대법원이 부부 강간죄 성립 여부에 대해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왼쪽이 양승태 대법원장.
    부조직법이 통과되고 새로운 부처 중심의 인사가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말연시 개각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개각은 직원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장관에 따라 정책방향, 인사 및 조직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 모두 촉각을 곤두 세운다. 30년 동안 공직 생활을 했지만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개각이 있다. 2004년 1월 초 새해 벽두부터 이뤄진 장관 개각이었다. 개각 발표가 나기 직전까지 우리 부처(여성부)가 개각 대상에 포함될 거란 예상은 거의 없었다. 당시 여성계의 오랜 숙원인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 제정 등 큰 실적을 남겼기 때문 이었다. 당시 장관은 여성단체 출신으로 여성 정책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분이어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장관이 되어서도 열정과 추진력을 갖고 부처를 잘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예상을 깨고 갑작스레 교체돼 부처 공무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대체 왜 교체된 거야?
    곳곳에서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온 얘기로는 그가 추진한 진보적인 정책들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그가 부부 강간죄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던 것이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3년 11월 그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부부사이에서도 존중돼야 한다”며“부부 강간죄를 도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부간의 성폭력은 대개 성폭력만 따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폭력적 성행위는 안 된다고 본다”는 말도 했다. 이후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여성부 홈페이지와 전화로 남성들의 비난과 질문이 쏟아졌다. 부부 강간죄는 부부 사이에 합의되지 않은 성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남편이 아내를 때린 뒤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어 여성단체에선 부부 강간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오던 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부부 강간죄란 용어에서 남성들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장관의 발언은 10년 앞을 내다 본 소신 발언이었다. 작년 5월 대법원이 실질적인 혼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폭행이나 협박으로 배우자를 간음한 경우엔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970년엔“설령 남편이 강제로 아내를 간음했다고 해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부부 강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43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사실 이 판결은 10년 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고 그런 추세가 대법원 판결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10년 전 그해 가을 곤혹을 치렀던 여성부 홈페이지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엔 조용했다. 예의 그 장관은 부부 강간죄 도입 필요성을 역설한 지 두 달 후 바뀌었다. 보통 장관은 2년 하면 바뀐다. 그도 2년 가까이 했으니 바뀔 때가 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실책 없이 좋은 실적을 냈던 그를 갑자기 바꾼 것은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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