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6 딸 생리통까지 노심초사했던 '딸바보' 내 남편…그를 시무룩하게 만든 딸의 한마디

浮萍草 2015. 2. 9. 06:00
    리미엄조선에 글을 쓰면서 덤이 하나 생겼다. 
    이메일로 격려와 관심을 가져주는 독자와 소통하는 즐거움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은 댓글 달기가 어렵다면서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 이름 모르는 사람에게서 정중한 이메일을 받았다. 
    알고 보니 미국에 사는 남편의 오래전 친구인데 우연히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했던 것이다. 
    그분은 조선일보 애독자라고 한다. 
    내 이름이 특이하니 마침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가 보고 싶고 찾고 싶은 친구였는데 프리미엄조선에 뜬 내 이메일주소가 두 남자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얼른 남편에게 친구의 메일을 전달했다. 
    오랜만에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들 간에 대화의 꽃이 피어올랐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까 궁금했다.
    직업? 건강? 다 틀렸다. 
    직업은 은퇴했으니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건강도 한두 마디하고 나면 끝이다. 
    두 중년남자 대화의 대부분은 자녀였다. 
    자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어떻게 자식을 키웠는지, 아들 장가는 보냈는지 손주는 있는지 등등. 
    30년 만에 만난 그들이 그동안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역할은 아버지였던 것이다.
    지난 4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한 아버지가 딸 몰래 눈물을 닦고 있다. /윤동진 객원기자

    남편의 친구는 30년 전 파견 나갔던 미국 회사에 눌러 앉아 이민을 갔다. 외로운 외국생활에서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이었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3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었던 거의 잃을 뻔했던 자식이다. 그 아들이 지금은 의과대학의 전문의가 되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아들은 부모도 극진히 생각한다고 한다. 최근 결혼을 했는데 부모는 달랑 100달러만 건넸고 본인들이 다 알아서 했다고 한다. 남편 친구는 아들 집에 가면 아들이 준비해놓은 한국 소주를 함께 마시는 데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 자랑하는 영락없는 한국 아빠다. 내 남편은 딸바보다. 직장일 이외의 모든 관심과 초점이 두 딸에 있었다. 공직생활로 바빴던 나는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기 어려웠다. 대학에 근무하는 남편보다 퇴근시간이 항상 늦었다.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남편은 일찍 와서 밥을 했야 했다. 그런데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딸들이“엄마와 아빠 직장이 거꾸로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서운함을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 딸은 가끔 심한 생리통을 겪는다. 의사들은 그저 진통제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말만 한다. 아이의 생리가 시작되면 아빠는 노심초사이다. 한동안은 생리주기까지 꿰고 있었다. 아이가 배가 아파 떼굴떼굴 구르면 아빠는 약을 먹이고 손바닥 여러 곳에 쑥뜸을 떠주고, 손발도 주물러준다. 그렇게 큰 우리 딸들은 이제는 아빠의 관심이 부담스런 나이가 됐다. 제발 우리에게 관심을 그만 갖고 아빠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 아빠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두 중년 남성의 대화에는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애쓴 대한민국의 아빠의 모습이 녹아 있었다. 자녀들이 성장해 곁을 떠나가니 허전하고 쓸쓸해하는 모습도 똑같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산 아빠들에게 남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통계이다. 지난 9월 통계청 발표를 보면 작년 전체 사망자 수가 7년 만에 감소했는데 50대 남성 사망자 수는 증가했다. 50대에서는 남성 사망자가 여성의 2.8배에 달했다. 남성의 자살율도 여성의 2.3배나 된다. 시어머니는 딸만 다섯인 집안의 맏딸이시다. 다섯 자매 중 지금 남편과 같이 사는 분은 한 분밖에 없다. 시이모부님 두 분은 50대에 지병으로 고인이 되셨다. 시이모부님들만 봐도 통계청 통계가 현실로 다가온다. 집에 있는 아내들은 모른다. 바깥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힘든지 우리 아빠들은 그 힘든 바깥일을 견디면서도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남편에게 잘해 줘. 한국 직장 너무 힘들어.”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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