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갔다 온 날 우리 딸의 단골 질문 "엄마, 또 얼마나 혼났어?"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지난 16일 기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 의원의 질의에 최경환 부총리가 웃음을 보였다가 정희수 위원장으로부터"의원이 질의할 때 웃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걸 보면서 30년 공직생활 동안 나와 동료 공무원들이 국회에서 엉뚱한 이유로 야단맞은 일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국정감사 때 웃었다고 단상으로 불려나온 모 여성국장이 있었다.
그는 빙긋 웃었을 뿐인데 비웃는 것 같았나 보다.
“왜 회의 중에 웃고 그래요!”
의원의 호통에 그녀는“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살짝 띤 웃음기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지만 어디까지가 견제인지 경계가 없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더구나 국회가 예산과 법안을 통과시켜줘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로선 국회가 중요하다.
특히 공무원 직급이 올라갈수록 국회와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은 무조건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공직생활 내내 국회에서 질책을 수도 없이 받았다.
행정부 잘못을 지적하는 건 국회의 권한이다.
정부가 잘못했다면 야단을 맞아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이제 업무로 지적받은 건 거의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태도 때문에 야단맞은 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감정이 개입되었기에 그럴 것이다.
 | ▲ 작년 6월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서 당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이 이복실 전 차관. /조인원 기자 |
맨 처음, 태도 때문에 야단맞은 건 아마 과장 때였던 것 같다.
회의 중에 갑자기 어느 의원이 소리를 질렀다.
“어이,저 뒤에 다리 꼬고 앉아있는 여직원 누굽니까?
똑바로 앉아요!”얼굴은 새빨개지고 가슴은 콩당콩당 뛰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그 의원 성함은 잊었지만 그 장면은 눈에 선하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어느 일요일 저녁의 갑작스런 전화였다.
2006년이었던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스산한 저녁 7시, 의원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S 의원실입니다.
지금 당장 국회로 오세요.
의원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그때는 보육정책국장을 할 때였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료 요구 때문에 그 의원실과 실랑이가 여러 번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일요일 저녁에 전화해서 아무 설명이나 사전 통보도 없이 갑자기 국회로 오라고 호출을 하다니.
그래도 국회의원이 부르는데, 가긴 가야 하는 거 아냐….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이 소리쳤다.
“가지마! 공무원이 무슨 죄인이야?”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결국 국회에 가지 않았다.
18대 국회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의원실에 갔다.
보고가 다 끝나자 의원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의원 왈,“이 국장은 항상 뭐가 그리 당당해요?
목소리를 낮춰요.
국회에 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그 의원은 내가 평소 큰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게 거슬렸나보다.
을은 을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목소리 큰 을은 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2012년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L보좌관이 슬며시 말을 건넸다.
“실장님,국회에 올 때 옷 좀 조심해서 입으세요.”
아니 갑자기 웬 옷타령? 이유가 있었다.
보좌관 왈,“여자 의원님들이 실장님은 공무원답지 않게 너무 화려하게 옷 입는다고 뒤에서 뭐라고 그래요.”
사실 공무원다운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색상이 다소 있었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직급에 맞게 옷을 더 점잖게 입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나는 여당 예결위 간사로부터 그 해 결산소위에서 결산 설명을 제일 잘한 공무원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처럼 언행에 대한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국회만 가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가는 바람에 한 달간 장관직무대행을 했다.
마침 국회 여성가족위에서 2013년도 결산심사를 받게 되었다.
아침 10시쯤 시작해 오후 4시쯤 끝났다.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모 의원의 충고대로 공무원답게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답변했다.
그런데 내 답변 모습을 본 모 공공기관장이 말했다.
“차관님, 왜 차관님답지 않게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공공기관장이 된 지 6개월이 채 안 된 그에게 말했다.
“국회에서 30년 지적당해 보세요. 저처럼 됩니다.
그렇지만 목소리 작으면 할 말을 더 할 수 있어 좋아요.”
공무원을 ‘을’로 보지 않고 태도 아닌 정책 놓고 토론하는 국회의원 많아졌으면
돌이켜보면 내가 국회 가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가 노심초사하는 날이었다.
국회 가는 날, 우리 딸 단골 질문은 “엄마 오늘은 얼마나 혼났어?”였다.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이고 싶었는데 국회에 갈 때면 거꾸로 근심을 안겨주는 못난 엄마가 됐다.
나만 그랬을까? 동변상련이라고 요즘 퇴직하신 공무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분들에게“퇴직해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으면 한결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국회에 안가도 되는 거지요.”
그 분들은“국회에 안 가도 되는 민간인이 이렇게 편한지 몰랐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그래서 이런 바람을 가져 본다.
공무원들을 을로 보지 않고 공무원들의 태도가 아닌 정책을 놓고 토론하고 질책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 Premium Chosun ☜ ■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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