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3 다리 꼬고 앉았다고, 목소리 크다고, 옷이 튄다고 수없이 질책당한 여성 공무원의 30년 국정감사

浮萍草 2015. 2. 4. 06:00
    국회 갔다 온 날 우리 딸의 단골 질문 "엄마, 또 얼마나 혼났어?"
    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지난 16일 기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 의원의 질의에 최경환 부총리가 웃음을 보였다가 정희수 위원장으로부터"의원이 질의할 때 웃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걸 보면서 30년 공직생활 동안 나와 동료 공무원들이 국회에서 엉뚱한 이유로 야단맞은 일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국정감사 때 웃었다고 단상으로 불려나온 모 여성국장이 있었다. 
    그는 빙긋 웃었을 뿐인데 비웃는 것 같았나 보다. 
    “왜 회의 중에 웃고 그래요!” 
    의원의 호통에 그녀는“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에 살짝 띤 웃음기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지만 어디까지가 견제인지 경계가 없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더구나 국회가 예산과 법안을 통과시켜줘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로선 국회가 중요하다. 
    특히 공무원 직급이 올라갈수록 국회와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은 무조건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공직생활 내내 국회에서 질책을 수도 없이 받았다. 
    행정부 잘못을 지적하는 건 국회의 권한이다. 
    정부가 잘못했다면 야단을 맞아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 이제 업무로 지적받은 건 거의 기억이 안난다. 
    하지만 태도 때문에 야단맞은 건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감정이 개입되었기에 그럴 것이다.
    작년 6월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서 당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이 이복실 전 차관. /조인원 기자

    맨 처음, 태도 때문에 야단맞은 건 아마 과장 때였던 것 같다. 회의 중에 갑자기 어느 의원이 소리를 질렀다. “어이,저 뒤에 다리 꼬고 앉아있는 여직원 누굽니까? 똑바로 앉아요!”얼굴은 새빨개지고 가슴은 콩당콩당 뛰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그 의원 성함은 잊었지만 그 장면은 눈에 선하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어느 일요일 저녁의 갑작스런 전화였다. 2006년이었던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스산한 저녁 7시, 의원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S 의원실입니다. 지금 당장 국회로 오세요. 의원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그때는 보육정책국장을 할 때였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료 요구 때문에 그 의원실과 실랑이가 여러 번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일요일 저녁에 전화해서 아무 설명이나 사전 통보도 없이 갑자기 국회로 오라고 호출을 하다니. 그래도 국회의원이 부르는데, 가긴 가야 하는 거 아냐….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이 소리쳤다. “가지마! 공무원이 무슨 죄인이야?”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결국 국회에 가지 않았다. 18대 국회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업무보고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의원실에 갔다. 보고가 다 끝나자 의원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의원 왈,“이 국장은 항상 뭐가 그리 당당해요? 목소리를 낮춰요. 국회에 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그 의원은 내가 평소 큰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게 거슬렸나보다. 을은 을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목소리 큰 을은 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2012년 어느 날 평소 알고 지내던 L보좌관이 슬며시 말을 건넸다. “실장님,국회에 올 때 옷 좀 조심해서 입으세요.” 아니 갑자기 웬 옷타령? 이유가 있었다. 보좌관 왈,“여자 의원님들이 실장님은 공무원답지 않게 너무 화려하게 옷 입는다고 뒤에서 뭐라고 그래요.” 사실 공무원다운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색상이 다소 있었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직급에 맞게 옷을 더 점잖게 입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나는 여당 예결위 간사로부터 그 해 결산소위에서 결산 설명을 제일 잘한 공무원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처럼 언행에 대한 지적을 계속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국회만 가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조윤선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가는 바람에 한 달간 장관직무대행을 했다. 마침 국회 여성가족위에서 2013년도 결산심사를 받게 되었다. 아침 10시쯤 시작해 오후 4시쯤 끝났다. 힘들고 긴 시간이었다. 모 의원의 충고대로 공무원답게 작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답변했다. 그런데 내 답변 모습을 본 모 공공기관장이 말했다. “차관님, 왜 차관님답지 않게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공공기관장이 된 지 6개월이 채 안 된 그에게 말했다. “국회에서 30년 지적당해 보세요. 저처럼 됩니다. 그렇지만 목소리 작으면 할 말을 더 할 수 있어 좋아요.” 공무원을 ‘을’로 보지 않고 태도 아닌 정책 놓고 토론하는 국회의원 많아졌으면 돌이켜보면 내가 국회 가는 날은 우리 가족 모두가 노심초사하는 날이었다. 국회 가는 날, 우리 딸 단골 질문은 “엄마 오늘은 얼마나 혼났어?”였다.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이고 싶었는데 국회에 갈 때면 거꾸로 근심을 안겨주는 못난 엄마가 됐다. 나만 그랬을까? 동변상련이라고 요즘 퇴직하신 공무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분들에게“퇴직해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으면 한결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국회에 안가도 되는 거지요.” 그 분들은“국회에 안 가도 되는 민간인이 이렇게 편한지 몰랐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그래서 이런 바람을 가져 본다. 공무원들을 을로 보지 않고 공무원들의 태도가 아닌 정책을 놓고 토론하고 질책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