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4 "내가 하면 다 좋아해!"라고 큰소리친 국회의원…성희롱에 대한 남자들의 착각

浮萍草 2015. 2. 5. 06:00
    년 이맘때쯤일까?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가족하고도 친분이 있는 미국 서부 유명대학 교수가 성희롱 문제로 학교 출입정지처분을 받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교수는 평소 점잖고 허튼 농담도 안 하는 분이었다. 
    훌륭한 인품과 연구업적으로 세계적 명성을 쌓았고 제자들로부터도 존경 받고 있는 분이어서 성희롱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떤 일로 성희롱에 연루되었는지 궁금했다. 
    수소문해 보았더니, 
    교수는 대학원에 다니는 어떤 여성과 악수를 했을 뿐이라는데 그 여성이 성희롱 당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라고 했다. 
    이 대학원생은 11번의 소송 전력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대체 악수를 어떻게 했기에 성희롱이란 걸까.
    지금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니 최종 판결이 나와 봐야 결론을 알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이 교수는 이 건으로 반세기에 걸친 교수경력이 순식간에 멈추고 말았다. 
    늘 하는 악수에서도 성희롱 문제가 제기되자 이 학교 동료 교수 중 한 명은 아예 자비로 연구실 천장에 CCTV를 달았다고 한다.
    성희롱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세계적 공통현상이다. 
    우리보다 먼저 여성의 사회 참여를 경험한 미국은 1980년부터 고용평등기회위원회(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서 성희롱을 남녀차별의 한 
    형태로 보기 시작했다. 
    1991년에 성희롱 사건 6893건이 접수되었는데 20년 후인 2011년에는 1만1717건이 접수되었다. 
    20년 만에 사건이 거의 배로 증가한 셈이다. 
    이중 남성이 제소한 사건도 16%정도 된다고 한다.
    작년 7월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4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열린 성희롱 예방 교육.

    우리의 경우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성희롱 지뢰밭’이었다. 말단부터 직장을 시작한 대학교 선배 언니 얘기를 들어보면 사무실에서 상사들이 엉덩이 툭툭 치는 건 그냥 장난이고 심지어는 회식자리에서 무릎을 만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내색도 못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선배는 “아무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게 불과 20년 전이기 때문이다. 1995년 우리나라 법령에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1999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 전신이었던 여성특별위원회에서 성희롱 사건을 접수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인권위원회로 업무가 이관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 문제가 논란이 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남자들의 큰 착각도 한 원인이다. 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이 지인들에게 했다는 이 말은 그 실상을 잘 보여 준다..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성희롱에 걸려도 나는 아니야. 내 사전에 성희롱은 없어. 왜? 내가 얘기하면 여자들이 다 좋아하니까.” 남자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떠는 너스레이자 허풍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인식 속에는 그런 생각이 내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쯤되면 그런 무지막지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다른 남성들도 그런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고위직일수록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웃어주면서 비위 맞춰주는 부하직원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게 본인이 갖고 있는 권력 때문인지 모르고 인기가 많아 그런 거라고 착각한다. 아니면 그런 자기 모습이 남자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착각인 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직장에서나 이루어지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헛되이 받은 것 이다. 성희롱 여부는 상대방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이젠 남자들도 성희롱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모 기관에 근무하는 남자후배를 모처럼 만났는데 그가 고충을 토로했다. “우리 상관이 여자인데 회식자리에서 엉덩이도 툭툭 치고 성희롱 발언도 무지하게 해요.” 내가 신고하라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일로 신고한다고 찍힐 수도 있고 창피해서 신고할 수도 없어요. 제가 참든지, 피해야죠 뭐.” 성희롱 당한 피해자가 그 사실을 공론화 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받게 되는 따가운 시선들도 아직 존재한다. 몇 년 전 성희롱을 신고한 한 여자사무관이 여성가족부로 급하게 전입해 온 일도 있었다. 그 부처에 계속 근무하기 어려워서 옮겼다고 한다. 아마 ‘그런 정도가지고 왜 그래?’ 하는 상사와 동료들의 눈초리가 힘들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부처를 옮겼을까. 그 사무관은 여성가족부에 몇 년 있다가 본인의 적성을 찾아 다시 타 부처로 옮겼다. 올 7월부터는 공공기관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은폐하거나 고충 처리과정에서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면 여성가족부 장관이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성희롱 예방을 위한 법적 장치들은 점점 견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의식도 이를 따라 같이 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내가 얘기하면 여자들이 다 좋아해!”라고 큰소리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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