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2 길거리 고양이 가족에게도 질서와 배려가 있었다

浮萍草 2015. 2. 3. 06:00
    리 집은 3년 전부터 고양이를 키운다. 
    정말 우연치 않게 우리 가족 일원이 된 고양이는 길에서 태어났다. 
    만 세살 넘은 사내 녀석. 정확한 나이도 생일도 모른다.
    3년 전 긴 여름장마 때였다. 
    남편과 둘째 딸이 집 근처 산에 가다가 주택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거의 아사 직전이었다. 
    그냥 놔두면 죽을 것 같고 눈빛이 너무 애처롭고 불쌍해 데리고 왔단다.
    나는 그 때 출장 중이어서 집에 없었는데 전화로 그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다. 
    “아니 마누라가 동물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 좁은 아파트에 데리고 오면 어떡해요? 귀여운 강아지도 아니고 왜 하필 고양이에요?”
    집에 돌아와 보니 새끼 고양이가 내 눈치를 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제발 살던 곳에 내다 버리세요. 
    아니면 내가 집을 나갈래요!” 
    나는 고양이가 그냥 싫었다. 사악해 보이고 눈이 무서웠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생겼다. 
    고양이 마술에 빠졌는지 내가 한 달 만에 확 바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고양이를 보면,“아이 귀여워라”를 입에 달고 다니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함께 일어나 내 다리에 몸을 비빈다. 
    밤에 퇴근하면 벌써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현관으로 뛰어나와 나를 맞는다.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없다.
    이복실 전 차관과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어느새 소중한 우리 가족이 된 그 녀석에게 나는 감사한다. 녀석은 나의 오래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준 고마운 스승이고 내 정신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같이 살아보니 고양이는 무섭지도 사악하지도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반려 동물이었다. 우리 가족은 길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대화의 꽃을 피운다.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다보니 이젠 길거리 고양이들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을 자주 간다.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시장 바로 옆 강동시립도서관 건물 구석에는 어린 고양이 부부가 새끼 한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 길고양이 가족을 이젠 내가 돌본다. 시장에 갈 때마다 고양이사료를 챙겨 간다. 길고양이 존재에 대해 일부 도서관 직원들은 싫은 내색을 보이지만 도서관을 오가는 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어 나름 안심이 되기도 한다. 금슬 좋은 이 고양이 부부에게 사료를 주면 둘이 함께 쪼르륵 달려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모습이 있다. 남편 고양이가 먼저 밥그릇을 차고 앉아 혼자 먹는다. 아내 고양이는 먹이를 먹지 않고 옆에서 앉아서 기다린다. 충분히 둘이 같이 밥을 먹을 공간이 있는데도 그렇다. 난 처음엔 남편 고양이가 먹이를 모두 다 먹어 버릴까봐 살짝 맘을 졸였다. 하지만 반 정도만 먹고 옆으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아내 고양이가 사료를 먹었다. 한번은 아내 고양이가 안쓰러워 밥그릇을 끌어다가 얼굴에 먼저 들이대 보았지만 쳐다만 보고 먹지 않았다. 가정 내의 서열인지 동물 세계의 서열인지 모르겠지만 길고양이 가족에도 서열과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고 놀라워 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딸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얘기를 더 해줬다. “그런데 아내 고양이가 임신했을 때는 아내 고양이를 먼저 먹였어. 새끼 낳고도 한참을 그랬어요.” 아, 그랬었구나 하찮은 동물인데도 임신한 아내를 보호하고 배려할 줄 아는 남편 고양이 그래서 그렇게 화목해보였구나. 동물의 세계에도 질서가 있었고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가정에도 있는 진솔한 배려,이것이야 말로 화목한 가정의 기본일 것이다. 점점 더 많은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 길거리 고양이 가정은 우리 인간들에게 훈훈한 교훈을 주고 있다.
    Premium Chosun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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