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족 이야기

1 '30년 불량엄마'의 엄마 노릇 40일…그래도 남는 미안함

浮萍草 2015. 2. 2. 06:00
    같이 직장생활을 해도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많이 다르다. 
    나는 직장인인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였기에 지난 30년 동안 늘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과 불안감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했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잘 갔는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행여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는 당하지 않는지 걱정이 됐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올 시간이면 또다른 걱정이 생긴다. 
    지금 아이들이 집으로 갈 텐데 혹시 열쇠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가는 건 아닌지,학교에서 별일은 없었는지, 저녁은 제대로 먹었는지…. 
    매사에 애가 타는 엄마의 심정을 남자들은 잘 모른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소홀히 한다는 말을 들을까 맘 졸이던 그 마음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아이 키우는 워킹 맘의 똑같은 숙제일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국정감사 준비로 모두 비상이 걸려서 새벽까지 근무해야 하는 상황인데 간단히 저녁을 먹고 사무실을 둘러보니 젊은 여자 사무관의 얼굴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다가가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그녀는 눈물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어렵게 말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데 시간이 끝나 돌볼 수가 없으니 데리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텅 빈 어린이 집에서 선생님과 둘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의 불안한 마음이 확 전해져왔다. 
    나도 젊은 시절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직장 맘의 여러 애환 중 으뜸은 육아문제가 아닐까? 지금도 매년 19만 명의 직장 맘들이 출산과 육아로 일터를 떠나고 있다. 
    “여긴 걱정 말고 얼른 퇴근하세요. 
    우리가 준비할게요.” 
    억지로 등 떠밀어 그녀를 아이에게 보냈다.
    나는 1985년 행시 28회로 공직에 임용돼 30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일하다 지난 7월 그만뒀다. 
    만 23세 철없던 나이에 행정사무관이 된 나는 한 단계 한 단계 승진하고 다양한 보직 맡게 될 때마다 기대와 보람,실망과 아쉬움 등을 경험하면서 살아왔다.
    앳된 20대에서 50대 초반까지 젊음과 열정을 다 바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분명 마음 허전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이제껏 갈망
    하던 자유가 생긴 셈이었다. 
    정말 완전한 자유였기에 직장에 매여서 못했던 일들을 앞으로는 제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딸들을 위해 따뜻한 밥해주기’.모든 일의 가장 앞자리는 역시 엄마노릇 제대로 하기로 시작되었다. 
    그 다음은 여행 실컷 다니기,시골 집에서 텃밭도 가꾸고 대추나무,감나무,상추 심어 자연식으로 밥 해먹기,매일 산에 오르고 운동하기,시간나면 책 쓰기 등.이리저리 
    생각해봐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딸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밥을 해주는 일이었다. 
    아마 대다수의 퇴직자들이 나와 비슷하게 적어 나가지 않았을까.
    앞뒤 생각하지 않고 여권부터 준비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 밟고 있는 큰딸에게 따스한 밥을 해주고 싶었다. 
    이제껏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았던 낙제 엄마였기에 그 마음이 더 절실했다. 
    직장을 그만둔 지 딱 일주일 만에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큰딸이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곳은 뉴욕 주의 이타카(Ithaca)라는 작은 대학도시이다. 
    이타카는 인구가 3만명 정도 되는데 주민들 중간 연령이 22세이고 60% 정도가 대학생으로 구성된 매우 젊은 도시였다.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면 주변에는 커다란 호수와 옥수수 밭,끝없는 숲이 펼쳐져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딸아이 이외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외로운 도시였다. 
    그래도 40일 동안 아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딸과 밀린 수다를 떨고,빨래 해주고 집안청소를 하는 등 행복한 엄마노릇을 하고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와 기획재정부 고위관료였던 K씨와 통화했다. 
    그의 아들도 이타카에서 유학하고 있었다. 
    “실장님,저 이타카 다녀왔어요.”
    “아 그래요? 
    며칠이나 계셨어요?” 
    40일 있다가 왔다고 하니 그가 놀랐다. 
    “그 시골에서 4일이 아니고 40일이요? 
    심심해서 뭐하고 있었어요? 
    나는 3일 지나니까 할 게 없던데요.”
    생각해보니 3일과 40일의 차이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 차이였다. 
    엄마는 40일이 금방 갔다. 
    밥하고 청소하고 점심 싸주고 빨래하고 가끔 근처의 블루베리 농장에 가서 싱싱한 블루베리를 한보따리 따와 아이와 함께 실컷 먹었다. 
    아이가 학교 가고 나면 나는 호숫가와 숲속 길을 걸어 학교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서너 시간 죽치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더 있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주례 약속이 있어서 돌아와야 했다.
    단 40일의 엄마 노릇으로 ‘30년 불량엄마’의 미안함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마도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결코 내려놓을 수도 놓아지지도 않는 워킹 맘의 어려움을.
    ㆍ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1985년 행시 28회로 공직에 임용돼 30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일하다 지난 7월 그만뒀다. 두 딸의 엄마로, 한 가정의 주부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지난 30년간 꽉 짜인 조직생활에서 가정 때문에 직장 소홀히 한다는 얘기 듣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지금이나 그때나 육아문제로 고생하는 직장 맘의 현실이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다. 매년 19만명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직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한 번 경력이 단절되면 다시 사회에 복귀하기 쉽지 않다. 아직 두 딸이 결혼 안 했지만 나중에 손자들 꼭 봐줄 거다. 여성들이 대거 사회에 진출하고 있으나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때로는 지팡이도 필요하다.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하는 차세대들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팡이가 되고 싶다.

    Premium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bslee8812@gmail.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