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음악가가 사랑한 여인

9 모차르트, 사랑하는 여자가 청혼 거절하자 그 여동생에게…

浮萍草 2014. 12. 10. 06:00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 누나 난넬.(1763, 파리
    루이 드 카르몽텔 그림)
    람들은 기적을 바란다. 위인 중에서도 그들이 탄탄대로를 걸었을 때보다는 역경을 딛고 이뤄낸 성공 스토리가 감동이 된다. 음악가 중에서도 멘델스존처럼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것보다는 베토벤처럼 청각 장애를 극복했다던가 하이든처럼 악처를 두고서도‘파파 하이든’이란 별칭을 얻는 것처럼 시련을 이겨낸 후의 업적에 더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음악가의 생애를 기록함에서 그들의 신화 만들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모차르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음악 신동으로 기억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오스 트리아의 음악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중에서 ‘신동’,‘천재’라는 말은 모차르트에게만 붙여진다.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문학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기본 바이올린 교습법>을 남겼다. 이 책은 세계 각국어로 출판되어 오늘날까지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레오폴트는 아들의 음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명성을 버린 채 평생을 아들의 뒷바라지를 한다.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하고 모차르트가 6살 때부터 15살까지 거의 10년간 빈과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와 영국,프랑스,네덜란드까지 전 유럽을 여행하게 한다.
    이 여행에서 신동 모차르트는 연주를 통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대가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오늘날에도 자식의 음악교육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부모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에 비유되기도 한다.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의 경우도 그렇다. 랑랑의 아버지도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랑랑을 데리고 고향인 선양을 떠나 베이징으로 옮겨가며 좋은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혹독하게 아들의 연습을 감시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랑랑은 자살소동까지 벌이지만 결국 오늘날의 랑랑의 모습은 아버지의 교육열이 없었다면 분명히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발휘된 것 또한 아버지의 열정이 한몫을 한 것이다.
    ㆍ사촌과의 첫사랑, 모차르트는 분변음욕증?
    모차르트가 베슬레에게 보낸 편지(1779).
    모차르트는 21세에 만난 사촌 베슬레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베슬레는 발랄하고 자유분방했던 처녀로 아버지 레오폴트도 사촌과 친하게 지내기를 권했다. 그녀와의 편지 내용은 모차르트 연구가들도 저술을 꺼릴 정도로 거북한 표현이 많았다. 이를 두고 의학전문가들은 모차르트를 분변음욕증 환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분변음욕증이란 이성의 배설물을 보거나 냄새를 맡고 또는 배변하는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그의 가족들-아버지,어머니,누나 난넬-의 편지에서도 각 한 통씩 나타난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괴이하지만 그 당시 친밀한 농담 정도였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베슬레에게 특별히 이러한 표현을 많이 했던 것은 사실이며 (이것조차 모차르트의 나이가 그런 시기 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베슬레는 모차르트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척 이상의 대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베슬레는 모차르트와의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모차르트에게는 새로운 여인이 여신처럼 등장한다.
    ㆍ거절당한 사랑, 알로이지아
    1778년 모차르트가 만하임에 체류할 당시 만난 알로이지아는 이미 널리 알려진 16세의 성악가였다. 무엇보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노래에 매혹되었고 그녀를 위해 <연주회용 아리아 K.294>를 바친다. 모차르트에게 알로이지아는 고결한 여신과 같은 대상이었고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베슬레에게 보냈던 것과 같은 경박한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에게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모차르트의 정식 구혼을 거절한다. “오늘 저는 우는 일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답니다. 아무것도 쓸 수 없고 제 마음은 너무나 슬퍼서 그저 눈물만 흘릴 따름입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절망스런 마음을 전한다. 알로이지아는 배우이며 화가인 요제프 랑거와 결혼했고 그 결혼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60대 후반까지 성악 레슨을 해야 했던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가 평생 자신만을 사랑했다고 믿었고 젊은 시절 모차르트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알로이지아가 결혼하고서도 베버가에 머물던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에게 눈길을 돌린다. 정말 콘스탄체를 좋아했던 것일까?
    W.A.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2악장은 영화 ‘Elvira Madigan’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Conductor: Riccardo Muti, Piano:
    Maurizio Pollini)

    ㆍ천재가 선택한 인생의 반려자
    “어릴 때부터 속옷이나 세탁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해 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아내가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아내가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독신은 반쪽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제 상대가 누구이냐고요? 설마…. 하고 짐작하실지 모르겠지만 베버가의 콘스탄체양입니다. 사실이에요” 1781년 12월,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결혼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체가 못생기지 않았지만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외모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도리를 다함에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알로이지아와의 일을 기억하는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했고 사실 베버가에서도 모차르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베버가로부터 혼인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한다. 그것은 3년 내에 결혼하지 않으면 300훌덴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베버가는 가장의 죽음으로 인해 딸들의 혼인을 서두르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서약서에 서명하고 1782년 8월 4일에 결혼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한 채. 모차르트는 결혼을 기념해서 장엄 미사곡 C단조를 작곡했다. <키리에>의 중간부의 소프라노는 부인 콘스탄체를 위해 특별히 작곡했다. 결혼한 해 10월, 초연에서 콘스탄체가 독창했다.
    ㆍ음악가의 악처로 오명을 남긴 콘스탄체, 하지만…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처럼, 하이든의 부인 마리아처럼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도 악처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낭비벽이 심해 모차르트는 평생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자신이 성악가로서 노년에도 모차르트의 곡들을 기억하고 노래할 수 있었고 3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또한 말년에 모차르트는 친구들에게 사흘이 멀다하고 돈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모차르트가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시기(1789-1791)는 터키와의 전쟁기간으로 모차르트를 후원하던 귀족들이 전쟁터에 나갔거나 물가 상승 등의 요인으로 모차르트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던 것뿐이다. 모차르트는 대체로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그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모차르트의 경우 어느 음악가보다 더 많은 진실이 각색되어 소설처럼 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차르트의 이름이 ‘신동’ 혹은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전해져서일까? 아니면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서였을까?
    W.A.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 Adagio (Conductor: Claudio Abbado,Clarinet: Sabine Meyer)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1791).
    당대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였던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 2악장 아다지오는 영화 ‘Out of Africa’에서 카렌과 데니스의 마음을 이어주는 음악으로 흐른다.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초기 전기 작가들은 당사자를 한 번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쓴 경우가 많으며 사진이 없던 그 세대의 초상화 또한 직접 본 적 없는 사람들의 그림에 의해 미화된 경우가 많다. 또 편지와 같이 하나의 기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미 당사자가 떠나버린 역사의 인물에 대한 서술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과학의 발달은 옛 기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 하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가에 대해 제대로 안다는 것! 수백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 주옥같은 명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 음악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Premium Chosun        고은영 피아니스트 21c.muse.k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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