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마음 읽기

고양이에 떠는 30代, 기억서랍 속엔 어릴적 엄마 기다리다 고양이 본 공포가…

浮萍草 2015. 1. 2. 06:00
    20대 후반의 유치원 선생님 K가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은 갑자기 나타난 심한 불안 증상 때문이었다. 
    1년 전 외국에 출장 가는 남자 친구를 배웅하러 갔을 때 처음 심한 불안을 경험한 이후 몇 차례 더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상담 과정에서 K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드러났다. K
    는 5녀 1남 중 넷째 딸이었다. 
    어머니는 막내 남동생을 낳은 후 다섯 아이를 키우는 게 벅찼는지 다섯 살 된 넷째 딸을 시골 외갓집으로 보냈다.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가 2년 후 집으로 돌아온 K는 한시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평소 의지하고 지내던 남자 친구와의 짧은 이별은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유년기의 아픈 이별 기억을 자극했고 그것이 불안이라는 증상으로 되살아났던 것이다.
    30대 초반의 회사원인 P는 고양이를 병적으로 무서워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를 그토록 싫어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의 고양이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주변에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필자는 P에게 고양이와 관련된 숨겨진 기억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최면 치료를 권했다.

    최면 상태에서 P는 여섯 살 유치원생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불 꺼진 어두운 교실에 혼자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갈색 길고양이 한 마리가 교실 창문으로 들어왔다. 고양이와 정면으로 마주친 P는 무서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최면 상태에서 몸을 심하게 떨고 눈물까지 흘렸다. 우리 뇌가 매일 처리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금방 삭제되고 일부 중요한 것만 기억의 형태로 압축 저장된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 기억으로 보관된 것을 '사실 기억'이라고 한다. 사실 기억은 뇌 속 '해마'라는 기억 서랍에 보관된다. '정서적 기억'이란 것도 있다. 실제 사건이 그와 연관된 강렬한 감정의 형태로 저장되는 것을 말한다. 정서적 기억은 사건과 관련된 핵심 감정만 '편도'라는 또 다른 뇌 속의 기억 서랍에 보관된다. 그리고 사실 기억이든 정서적 기억이든 세부 내용은 대부분 무의식에 묻혀 있다. 그런데 가끔 기억 서랍 속의 압축된 기억과 무의식의 세부 기억이 잘못 연결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고양이 공포증이 있던 P의 경우가 그랬다. P가 유치원에서 고양이를 봤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교실에서 무서운 고양이와 혼자 맞닥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엄마가 항상 바빠서 P는 늦게까지 엄마가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때마다 어쩌면 엄마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P가 고양이를 봤던 그날도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었고 선생님과 함께였다. 그런데 왜 그는 그날 어두운 교실에서 혼자 무서운 고양이와 맞닥뜨린 것으로 기억할까.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두려움이 고양이에게 투사되었고 결국 무서운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졌다. 기억의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의 사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 같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내용은 실제 경험한 사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무의식 속에 묻혀 잊히거나 교묘하게 왜곡되기 일쑤이다. 망각이나 왜곡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감정이다. 감정은 우리 기억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있는 기억이 때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기억과 감정은 얼핏 봐선 서로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인간이란 과거와 현재의 현실에 동시에 머물 수 있는 이중적인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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