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언니야, 여기 칼국수 한 그릇!

浮萍草 2014. 12. 21. 10:46
    남대문 명물 '칼국수 골목' 직장인에 중국인 관광객까지 추위·허기 달래려 몰려드네
    한 그릇 5000원에 인심 듬뿍… 억척 여인들 따뜻한 손맛에 칼바람 불어도 춥지 않네
    김윤덕 문화부 차장
    "워매~ 눈 온다 언니야. 새색시 분가루처럼 곱게도 온다 언니야." 오전 11시. 한여름 같으면 벌써 들이닥쳤을 손님들이 오늘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 눈까지 날리니 서울 남대문 명물이라는 칼국수 골목도 행인이 절반으로 줄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던가. 그나마 뜨끈한 국물로 추위를 녹이려 들어선 사람들은 골목 어귀 식당에서 잡아챈다. 골목 끄트머리에 옹색하게 붙은 순례씨 식당이 손님을 차지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터넷을 하느님처럼 믿는 뜨내기들은 TV에 비친 집이 젤로 맛있는 줄 알고 찾아든다. #
    "잘생긴 오빠야, 여기 앉으래이. 미스코리아 언니는 어데 가노? 보리밥, 찰밥 시키면 칼국수, 냉면까지 준다 아이가.
    " 눈 구경에 신났던 통영댁이 안 되겠는지 팔을 걷어붙인다. 10년 가까이 순례씨 일을 거드는 아낙이다. 저만치 사람 머리통만 보이면 다짜고짜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귀청이 떨어진다. "이리 앉으라니까네. 맛없으면 5000원 물러준다니깐 그라네." 그악스러운 기세에 어리바리 골목을 구경하던 젊은이들이 걸음을 멈춘다. "뭐 주까? 찰밥? 보리밥?" 못 알아듣는 눈치다. "중국서 왔나배. 그럼 판(밥) 주까? 아니 미옌(면)? 후루룩 이거?" 손짓발짓해 주문을 받던 통영댁이 돌아서 구시렁거린다. "뭐여. 여섯이서 게우 칼국수 두 개에 찰밥 하나여? 이거 설거지 값이 더 나오게 생겼네." 남대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이면서 칼국숫집들도 조선족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순례씨네 '서울식당'만 빼고 다 있다. 그래도 모른 척하는 주인이 고마워 통영댁이 짬짬이 익힌 중국말이다. "어려울 거 뭐 있노. 이리 오라커고, 앉으라커고, 얼마라커고 그라믄 되지. 경쟁력? 우리집은 맛으로 승부한다 아인교."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손님이 더러더러 오니 멸치 육수 진하게 우려낼 시간 충분하고, 공들여 지은 찰밥이라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순례씨 집에 10년, 20년 단골이 많은 까닭이다. "20년째 오는 신사는 무조건 칼제비만 먹는다우. 칼국수랑 수제비 섞은 거. 훤칠허니 어디 끗발 있는 회사 간부 같은데 여름이고 겨울이고 꼭 우리집만 와요. 엄마가 해준 것 같대." #
    스물아홉에 시작한 일이었다. 충청도서 고깃배 사업 하던 남편이 빈털터리 되면서 순례씨가 시장으로 나왔다. "어떡해. 애들이랑 먹고살아야지."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마흔두 살 됐으니 3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골목에 맨 처음 생긴 식당에서 일당 4000원 받고 종업원으로 일했다. 국수 한 그릇에 250원 하던 시절이었다. 칼국숫집이 하나둘 늘면서 순례씨도 가게를 차렸다. "남대문이 한창 번성할 때라 국수도 잘 팔렸지. 지붕이 없을 땐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먹었다우." 식당이 스무 곳 가까이 늘어나니 경쟁이 생겼다. 처음엔 냉면만 서비스로 줬는데 누군가 보리밥을 시작하면서 서비스가 셋으로 늘어났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눈 붙일 새 없이 국수 말고 보리밥 지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냈다. 밥때 놓치기 일쑤라 탈이 났는지 6년 전 위암 수술도 받았다. 한번 무너진 남편은 일어설 줄 몰랐다. "웬수가 따로 없지. 국수 말아 힘들게 번 돈 경마로 다 날렸으니 그래도 먼저 가고 없으니 섭섭해요. 구박이나 하지 말 걸. 요강이 팽팽 돌아간다는 가을 꽃게 한번 제대로 먹여보지도 못했는걸." 택배기사로 보이는 50대 중반 남자가 급히 들어와 앉는다. "찰밥 하나요." 두 여인이 바빠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밥을 소복이 담아 주자 남자가 한술 푹 떠서는 김가루에 굴려 맛나게 먹는다. 통영댁이 우거지 국물을 그릇이 넘치도록 부어준다. " 미생인가 매생인가 인기라카데. 남자들 불쌍하지. 언제 칼바람 불지 모르니까네. 어느 회사원이 부장한테 깨지면 지갑 속 마누라 사진을 딜여다봄시롱, 내가 이 여자와도 20년을 살았는디 겁날 거이 뭣이냐 한대서 배꼽을 잡아쨌지. 돈 쩍게 벌어온다 윽박지르지 마소. 살갑게 대해주소." #
    점심손님을 벼락처럼 치른 뒤 두 여인은 한숨을 돌린다. 커피가 꿀맛이다. "언니야, 임대료에 밀가루값, 채소값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디 고마 살살 여행이나 다니지 여태 고생입니꺼." "고생은 무슨 고생. 우리 엄니들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놀면 뭐해. 칠십까지는 국수 말게 해달라고 매일 밤 기도하는 걸." "아이고 무시라. 이래서 공부깨나 했다는 남정네들이 조선 여인들 발뒤꿈치도 못 쫓아온다고 하나배. 허구한 날 쌈박질이나 해서 나라꼴만 망쳐놓는가배."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보리밥 하나, 칼 하나, 냉 하나! 계란은 넣지 말라꼬예? 워메 50원 벌었네이." 머리에 한 상 얹은 통영댁이 콧노래를 흥얼대며 배달을 나선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활짝 열어젖힌 비닐문 너머로 흰 눈이 내린다. 탐욕과 분노로 얼룩진 한 해를 말갛게 씻기려고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린다.
    Premium Chosun Ne ☜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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