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오천원 월급 받는 조교와 결혼해 '서교동 달동네'서 40년을 살았죠…
참 많이 싸웠고, 살 만하니 아파요
어느 날 은퇴한 남편 손을 봤어요…
생각보다 작아 콧등이 시큰했죠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
| ▲ 김윤덕 문화부 차장 | 전화로 생떼 써 등록한 할머니예요.
'글 선생'이 소탈하고 푸근해 맘에 들어요.
저는 글을 쓴다고 써왔지만 띄어쓰기도 제대로 몰라요.
살도 붙일 줄 모르고요.
그냥 짤막하게 아이들 결혼하면 주려고 썼던 글들을 작은 책으로 낸 적 있지요.
애들 외지 나가 공부할 땐 신문이랑 책 전시도록에서 오린 글과 사진들 모아 편지로 부치는 게 낙이었어요.
집안일 끝내고 한가로이 우체국 가는 길이 어찌나 좋던지.
요즘도 빨간 우체통 앞에 앉아 어디론가 사랑 담아 보내는 이들의 표정을 보노라면 참 행복해요.
늦둥이 딸이 여섯 살이랬지요?
우리 손자도 여섯 살인데 종종 편지 띄울게요.
바쁠 테니 답장은 하지 말아요.
# 서교동 달동네
동네에'북 페스티벌'이 한창이에요.
남편이 매일 책을 한 보따리씩 사 들고 오네요.
오늘은 사진 공부 하는 아들 준다고'사랑의 방 베르나르 포콩 사진집'과 '고흐의 다락방'을 사왔어요.
저는 두꺼운 공책 한 권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요.
극동방송에서 10분 걸으면 저희 집이에요.
올해로 40년 살았어요.
열 평 남짓 마당에 배추와 무 심겨 있던 낡은 집이었죠.
돈이 조금 모이면 이곳저곳 고쳤어요.
마당엔 동네 아이들 타라고 그네도 매달고요.
대문 열면 당인리 발전소로 석탄 싣고 가는 기찻길이 보였는데 철길 양쪽엔 상추 깻잎 심은 텃밭이 줄줄이 있고요.
돌이 갓 지난 딸아이 끼고 낮잠을 자노라면 기차가 덜컹덜컹 지나갔지요.
낮은 담 너머 우리 아이들 주라고 이것저것 넘겨주던 옆집 영훈이 엄마는 이곳을'서교동 달동네'라고 불렀답니다.
그곳이 지금은 서울서 가장 번화한 동네가 되었으니 신기하지요?
젊은이들 찾아와 좋기는 한데 밤늦도록 노래하며 담배를 피워 대는 통에 요새 잠을 못 자요. 이사할 때가 된 걸까요?
# 남편의 손
그사이 소식 뜸했지요.
남편이 아팠어요.
간단한 수술이라더니 두 시간 넘도록 소식이 없어 일 났구나 했지요.
병실로 돌아와 다시 짜증내는 걸 보니 마음이 놓여요.
이젠 거의 회복되어 손주랑 그림도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사러 나가요.
은퇴 후 마음앓이를 했나 싶어 가슴이 짠했답니다.
1973년 5월 15일 마거릿꽃 한 다발 안고 1만5000원 월급 타는 조교와 결혼했지요.
며칠 전 내가 "우리 참 많이도 싸웠지?
살 만하니까 아프다 그치?"
했더니 남편이 빙그레 웃어요.
누군가 "남편 손이 멋진 줄 나이 들어 처음 알았다"고 하길래 저도 남편 손을 훔쳐본 적 있어요.
콧등이 시큰했지요.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거칠어서 평생 돈 좇은 적 없고 누구를 넘어뜨리고 일어선 적 없고 언성을 높인 적 없던 사람.
그래서 늘 빠듯했지만 남편 덕에 두 아이 반듯하게 자랐다는 고마움이 커요. 하긴 모르죠.
나 몰래 딴짓했을 수도, 호호!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
남편 손이 닿으면 우리 집은 구석구석이 밝아져요.
은퇴하더니 집수리에 더욱 열심이네요.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부아를 내면 남의 집처럼 얘기한다며 서운해해요.
요즘은 저를 위해서 한다는 말이 "밥하지 마"예요. 밥 달라 소리보다 더 무서워요.
# 중2 아들
드디어 중딩 아들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군요.
저는 때리기도 했어요.
새 옷 사주면 친구들한테 벗어주고 오고, 집에 안 와 학원에 찾아갔더니 등록한 사실이 없다고 해서 기함한 적 여러 번이었죠.
당시 유행한 통바지 자락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온 동네를 쓸고 다니길래 세탁소 가져가 밑단이랑 통 좀 줄여달라 했더니 주인이 물어요.
"아드님한테 허락받았어요?"
녀석이 하도 느긋해서"넌 대체 인생의 목표가 뭐니?" 물었더니 "재미있게 사는 거"라고 해서 두 손 들었잖아요.
아들은 그러려니 하세요.
중학교 때 조용하면 대학 가서 사고 쳐요.
그저 엄마 보면 웃게만 해주세요.
사진 공부한 아들은 장가갈 생각도 않고 돌아다녀요.
요즘은 아는 형 잡지 일 도와주고 돈을 버는지 엄마 머리 하얘진 것도 모르고 화려한 색깔 옷을 사다줍니다.
"야무지게 모아야지"란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결혼하면 그리하겠나 싶어 고맙게 받지요.
아들이 행복해 보이니 저도 행복해요. 자식은 그런 거예요.
# 시아버지
곧 추석이에요.
장충동 산꼭대기에 신혼방 얻었더니 시아버님 시간만 나면 찾아와 이것저것 손을 봐주셨지요.
철없는 며느리에게 언제나 "고생한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하시며 사랑을 주셔서 동네 분들은 친정아버지인 줄 알았대요.
아들이 교수 되니 "어미야, 네가 복이 많다,
네 덕에 애비가 잘된다" 하셔서 어찌나 송구하던지요.
당신 돌아갈 날 아셨는지 저희 집 오셔서는 아들과 둘이 목욕하고 며칠 후 세상 떠나셨어요.
기일이면 남편은 꽃을 한아름 사와 아버님 사진 옆에 올려놓고 촛불을 켜요.
그리고 밤새 책을 읽지요.
꽃이 질 때까지.
그것이 우리 집 추도 예배랍니다.
작달비 멎으니 바람이 선선하네요.
이번 명절엔 쪼그려앉아 전 부치지 마시길. 나처럼 빨리 늙어요.
※ 이 글은 이화여대와 극동방송에서 20년간 상담 일을 해 온 수필가 김을란 선생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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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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