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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명예박사 학위 수여사에 담긴 정 회장의 일생(下)

浮萍草 2014. 12. 8. 21:37
    천하의 정주영도 무정한 세월 앞에 무너지고
    1995년 3월 고려대 명예철학박사 수여식에서 연설하는 정주영 전 회장./아산정주영닷컴 제공
    이날 홍일식 고려대학교 총장은 인사말에서 정 회장의 일생의 업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일반졸업식이 새로 지은 배를 처음으로 먼바다로 떠나 보내는 진수식에 비유된다면 이 명예박사학위수여식은 무거운 짐을 싣고 먼 항해를 떠났던 배가 무사히 역정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귀항하는 이를테면 ‘인간승리호’를 맞이하는 환호와 경축 위로와 존경, 그리고 한껏 선망을 보내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은 그 어느 의식보다도 경쾌하면서도 융중(隆重)하고, 권위적이면서도 성스럽기까지 한 대학 특유의 성사입니다. 따라서 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는 분의 공적은 바로 인류사회가 추구해야 할 보편가치의 구체적 사례가 되고 배움의 길을 걷는 젊은 지성들에게는 자아를 실현하는데 더없이 친근한 본보기가 되며 이는 또한 대학이 인류사회를 평판하는 지엄한 잣대이자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양성의 지고한 표상인 것입니다.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주영 선생은 무에서 유를 창출해 낸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그 분의 원대한 구상과 정밀한 설계 지혜로운 방책과 과감한 추진력, 그리고 필생의 신념과 ‘공성신퇴(功成身退)’하는 질박하고 담담한 인생관은 나날이 왜소해지고 부품화되어 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대한 꿈을 가꾸고 전체를 종합적이고 유기적으로 보게 하는 안목을 길러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기보다는 그 기계를 제어하는 경영주체로서의 인간을 길러 가는데 산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창조자, 시대의 선각자에게 저희 고려대학교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바로 고려대학교의 교육이념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저희 고려대학교는 [바른 교육, 큰사람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지식인을 양산했을 뿐 예지로운 지성을 길러내지 못하였으며 부품적 기능인은 배출했어도 우주와 인간을 경영할 수 있는 창조적 대인물을 길러 내는데는 소홀했습니다. 이제부터 저희 고려대학교는 선생님과 같이 새로운 시대의 창조자,시대의 선각자를 길러 내어 우리 민족을 보다 높고 넓은 차원에서 학술과 도덕과 문예의 진선미를 추구 하고, 건강한 체질과 우아한 기품을 바탕으로 항상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선량한 민족을 가꾸어 가는데 선도적 역할을 다 할 것입니다. 정주영 선생께서는 60여년 전 저희 고려대학교의 중심 건물인 본관을 지을 때 몸소 주춧돌을 놓아 주신 분입니다. 그 후 고려대학교는 그 건물을 기점으로 거대한 종합명문 대학으로 발전하였고 선생께서는 많은 기업을 창건하고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으켜 세계 유수의 기업인으로 대성하셨습니다. 이제 선생이 초석을 놓으신 그 학교가 60여 성상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인간승리의 길을 걸어 오신 선생께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게 되니 60여년이 지난 오늘은 인간승리의 본보기가 되시어 고려대학교의 정신적 주춧돌을 또 하나 보태신 셈입니다.” 필자는 이 수여식이 끝난 후 정 회장에게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했다. 그의 손은 불같이 뜨거웠고 이미 핏기가 가신 얼굴의 피부는 떠 있었다. 정 회장이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필자를 알아보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이윽고 반가운 듯 미소가 들었다. “아, 자네! 지금 뭐해?” “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꼿꼿하게 서 있는 그의 자세에서 양복 바지 겉으로 솟아 보이는 허벅지 근육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거인에게도 세월은 이토록 예외없이 무정한 것인가. 얼마 후 그는 대기하고 있던 흰색 에쿠스를 타기 위해 어렵게 몸을 가누며 한 발을 차 문턱에 올려놓고 있었다. 역시 여느 때처럼 주위에서 부축하는 것을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뭉클한 무엇을 느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젖어오는 눈시울을 닦았다. 시야에서 멀어지는 정 회장이 탄 차를 안보일 때까지 바라 보았다. 그를 보좌했던 14년 세월의 순간들이 스쳐갔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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