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이봐 해봤어?'

40 60대 정주영, 30대 수영선수 출신을 다이빙 시합에서 이기다

浮萍草 2014. 11. 12. 10:40
    "박군 더운데 뭐하고 있어, 나오지?”
    “네, 알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전경련 사절단 일행들이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찾은 것은 1979년이었다. 
    목적은 당시 북한 쪽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비동맹국 나이지리아와의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기화로 북한의 방해로 껄끄러워진 나이지리아와의 외교 
    관계를 정부를 대신해서 개선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대사관은 아예 없었고 라고스에 진출해있던 코트라도 추방명령이 발부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청와대 외교 안보 팀과 관련 정부 기관이 전경련 정주영 회장에게 나서 줄 것을 요청했고 정 회장 쪽에서도 엄청난 산유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와의 사업 기회를 타진해 보기 위한 경제 사절단 방문이었다. 
    이에 동참하여 20여명의 국내 대기업 총수들이 사절단에 참가했다. 
    그때 우리가 묵고 있었던 곳은 나이지리아에서 최고급이라는 수도 라고스의 에코이 호텔이었다.
    그러나 열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날씨는 우리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도 무더웠고 호텔의 시설은 열대의 혹독한 열기를 막아주기에는 너무도 열악했다. 
    방마다 마련된 에어컨은 선풍기 이상의 기능을 해내지 못했고 냉장고에 넣어둔 물이며 음료수도 겨우 뜨거움을 면할 정도였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 일행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피서법은 호텔의 옥외 수영장을 이용하는 것 밖에 없었다. 
    정 회장이 나오라고 한 곳도 바로 수영장이었다.
    나이지리아와의 경제협력문제도 물론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비동맹국 나이지리아와의 외교문제 개선에도 신경을 써야 했던 우리 일행의 스케줄은 대단히 빡빡하게 
    짜여져 있었다. 
    나이지리아 경제계 인사들을 고루 만나는 것은 물론 가급적 많은 정부 인사들과의 교분을 위해 각종 회합과 오찬,만찬 일정이 빈틈없이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1979년 4월 10일 한-나이지리아 경제협력위 제1차 합동회의를 마치고 나이지리아 산업성 장관 아에들레예(Aedleye) 박사를 방문한 한국측 대표단 일행
    전경련 제공

    하지만 이렇게 빡빡한 일정 중에도 우리는 틈이 나면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그 외에는 더위를 식힐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영장을 간다고 해서 제대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도 없었거니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수영장으로 내려 가서 더위를 식히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수영장 속에 몸을 담근 채 목만 내놓고 왔다 갔다 하다가 시간이 되면 후닥닥 방으로 뛰어올라와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로 떠나고 일정이 끝나면 다시 부랴 부랴 호텔로 돌아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내려가고 하는 더위와의 전쟁이었다. 정 회장과 함께 서둘러 수영장으로 내려가니 먼저 내려간 일행 중 몇몇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그나마 오후 늦은 시간이라 다음 일정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는 때문인지 제법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준비운동이고 뭐고 우리는 먼저 물에 뛰어들었다. 아침부터 몇 차례나 물 속을 들락거린데다 준비운동 하는 시간마저 아까울 정도로 더위를 식힐 물이 그리웠던 때문이다. 풀을 몇 번이나 돌았을까? 다소 더위를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어보니 정 회장이 수영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선 채 어딘가를 주의 깊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 회장이 눈길을 주고 있는 쪽을 바라보니 이번 사절단에 실무 팀의 한사람으로 참여한 삼미그룹의 이 이사가 막 다이빙대에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아 박군, 저기 좀 보게. 저 친구 아주 수영을 잘하는군 그래.”“회장님, 이 이사는 원래 부산고등학교 수영선수 출신이랍니다.” “그렇군. 근데 말이야, 내가 저 친구하고 수영 시합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이 이사와 시합을요?” 그때 정 회장은 이미 환갑을 넘어 7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게다가 정 회장의 수영실력은 강원도 통천 시골 개울에서 어릴 때 배운 소위 ‘개헤엄’이 바탕일 것이고,30대의 이 이사는 당당한 수영선수 출신이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시합이었다. 하지만 일단 입에서 말이 나온 이상 그대로 물러설 정 회장이 아니었다. “박군, 저기 가서 이 이사 좀 불러오게.” 나는 서둘러 이 이사가 수영을 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 정 회장의 이야기를 전했다. 얘기를 전해들은 이 이사의 표정은 무척이나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애초 상대가 되지 않는 시합이지만 일부러 져주는 것이 통할 정 회장도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하늘 같은 어른 정 회장의 부탁 아닌 부탁인 것을. 결국 이 이사는 나를 따라 정 회장이 서 있는 다이빙대 앞으로 가서 섰다. “이봐 이 이사, 나하고 시합 한 번 하세.” “예. 그런데 어떤 시합을….?” “아, 딴 게 아니고, 자네 다이빙하는 걸 보니 아주 멋지더군. 그래서 말이야, 자네하고 나하고 다이빙 시합을 해봤으면 하네. 여기서 다이빙을 해서 물속으로 누가 더 멀리 가나 내기를 하자는 거지.” 정 회장이 눈 여겨 보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보통 수영 선수들은 스타트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물 속으로 뛰어들어 한동안은 물 속에서 앞으로 나가며 속력을 내다 한참 지난 뒤에야 물 밖으로 나와 역주를 계속 하게 된다. 지금 정 회장이 시합을 하자고 하는 것은 바로 물 속으로 누가 더 멀리까지 가나 하는 것을 겨뤄 보자는 것이다. 본격적인 수영시합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 역시 정 회장과 이 이사는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30대의 폐활량과 환갑이 넘은 노인의 폐활량이 같을 수도 없지만 물살을 차내는 근육의 힘 역시 어림 없는 일이다. 어쨌든 정 회장의 제안대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정 회장과 이 이사의 진기한 시합 소식을 듣고 고 김각중 당시 경방 회장을 비롯하여 김입삼 전경련 상근 부회장, 설원식 대한방직 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고 장우주 당시 현대종합상사 사장 등이 모두 다이빙 대 근처로 몰려와 관중이 되어주었다. 먼저 이 이사가 다이빙 대에 섰다. 자세를 잡더니 이내 멋진 폼으로 몸을 날려 입수를 했다. 물속에서 그가 헤엄쳐 나가는 방향 수면위로 물결 소용돌이가 선을 그으며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후에 그는 수면 위에 얼굴을 내밀고 섰다. 어림 짐작으로도 꽤 큰 수영장의 반을 훨씬 넘은 지점이었다. “오 역시 멋지군. 자네 거기 똑바로 서 있어! 움직이지 말고.” 그리고 정주영 회장이 ‘관중’들의 열렬한 성원 속에 다이빙대 위에 섰다. 정 회장의 표정에 얼핏 비장한 결의가 보이는 듯 했다. 사실 구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 회장이 이기기를 바란다거나 하는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얼마나 이 이사 근처까지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한편 별일 없을까 하는 걱정도 뒤 따랐다. 이윽고 크게 심호흡을 한 정 회장이 물에 뛰어들었다. 입수는 역시 어색했고 물을 튀기는 첨벙 소리가 났다.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흐른 다음 정 회장의 얼굴이 물 밖으로 나왔다. 장하게도 이이사가 선 지점을 조금 지나서였다. 일순 다이빙대 근처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 일행들 뿐만 아니라 당시 수영장을 찾았던 외국인들 역시 노 회장의 승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봐, 내가 이겼지! 분명히 내가 이겼지?” 수영장 밖으로 올라오면서도 정 회장은 연신 자신의 승리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필자가 정 회장의 손을 잡아 수영장 밖으로 끌어올리면서 보니 그의 얼굴 한쪽 눈밑 부위에 시퍼런 페인트가 잔뜩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다이빙 입수 시 물속에서 멀리 가기 위해 욕심을 내어 깊이 잠수를 하려다 보니 바닥에까지 내려가 얼굴을 수영장 바닥에 긁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수영장 바닥에 최근 방수 보수공사를 했는지 방수 페인트가 덜 말라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 회장에게는 시합에서의 승리가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필자에겐 정 회장이 크게 다치지나 않았나 하는 것과 얼굴의 페인트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잠시 후 당시 나이지리아 정부 최고 실세인 석유상 부하리 장군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서둘러 정 회장을 모시고 객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페인트를 어떻게 지워야 할지 난감했다. 더운물을 받아 닦아보았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현지 현대 수행 팀이 어디선가 약용 알코올을 구해왔다. 이것을 수건에 묻혀 차근차근 닦아내니 그런대로 페인트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한참 알코올 뭍힌 수건을 들고 닥아 낸 끝에 페인트를 지우고 보니 이번엔 페인트가 묻었던 자리가 뻘겋게 부풀어 있었다. 그냥 바닥에 얼굴을 긁은 정도가 아니라 꽤 단단히 부딪혔던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얼굴을 찡그리거나 고통스러워 하기는 커녕 연신 소년같이 기분이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이봐, 분명히 내가 이겼지? 응?” “그럼요, 회장님.” 옷을 갈아입고, 장관을 만나기 위해 나가는 순간까지도 정 회장의 기분 좋은 표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 부하리 장군과의 면담은 물론 우리의 나이지리아 방문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성공리에 마쳤다. 어쩌면 이런 성과에는 정 회장의 좋은 기분 상태가 한 몫 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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