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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정주영 회장의 건강관리법 (하)

浮萍草 2014. 11. 22. 11:36
    무쇠 체력 정주영 회장도 감당 못했던 이 병
    
    70이 넘은 나이에도 신입 사원 젊은이들과 씨름을 겨루던 무쇠 같은 건강을 가진 정주영 회장에게도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커다란 건강상 약점이 있었다. 
    정 회장 건강의 아킬레스건은 자신의 심경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을 때 불 같은 성격에서 오는 ‘화병’이다. 
    한국 최고 그룹의 총수로서 세상에서 겪을 만한 일 다 겪었고 볼 것 못 볼 것 다 체험한 그였고 또 누구보다 큰 배포를 가진 그였지만 한 번 화가 났다 하면 꼭 그것이 몸의 
    탈로 연결되었다. 
    물론 아래 사람의 업무상 실수 같은 것은 불호령 한 번으로 끝나지만 어떤 일로 깊은 마음의 상처라도 입게 되면 그것이 ‘화병’이 되고 마는 것이다.
    평소 누구보다 건강했던 정 회장이 자신의 장담대로 100 세는 커녕 현역을 지키고 싶어했던 90세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도 어떻게 보면‘화병’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 회장의 아킬레스건인 화병이 탈이 되었던 한 사례는 1987년, 5공 정권 막바지 때의 일이었다. 
    1987년, 7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맞은 5공 정권은 재야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었다. 
    그해 초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고문 끝에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국민적인 분노를 샀고 전두환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재단 설립도 그의 퇴임 후‘섭정을 위한 장치’
    로 알려지면서 여론과 재야의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날로 격해지는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사회는 불안에 휩싸였다. 
    어떤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현대중공업 현장을 배경으로 선 정주영 회장./아산정주영닷컴

    이런 정국 속에서 국내의 대표적인 한 일간지의 사주가 상을 당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주요 일간지 사주의 집안 상이라면 국내 유력인사들이 모두 문상을 가게 되는 자리였다. 정 회장 역시 조문을 위해 상가를 방문했다. 때가 저녁 무렵이었다. 정 회장이 조문을 마치고 막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었다. 5공 정권의 막강한 실세로 알려진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인 청와대 수석 비서 모씨였다. 마침 상을 당한 상주의 언론사는 그가 언론인으로 재직했던 곳이기도 했다. 제법 넓은 마당 여기저기 쳐놓은 차일 밑 자리 중 하나에 앉아 있다가 정 회장과 눈이 마주친 그는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만난 옛 직장의 선 후배들과 상당한 전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눈이 마주친 사람이 누군가 확인하는 듯 하더니 곧 손을 흔들어 정 회장을 불렀다. “이보쇼, 정 회장, 나 좀 봅시다.” 정 회장한테 나이로 아들벌인 그의 말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그가 만취한 사실을 눈치챈 정 회장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의 부름을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냥 인사나 하고 가자는 심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아, 수석님 안녕하셨습니까? 그 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뭐, 죄송할 거까지는 없고…. 내 오늘 만난 김에 정 회장한테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요즘 이래저래 어렵다고들 하는데, 전경련 회장으로서 정 회장 생각은 어떻소? 도대체 뭐가 어려운 거요?” 그가 혀가 꼬인 말로 정 회장에게 물었다. “글쎄요, 뭐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다고들 합니다만…. 어쨌든 우리들이 힘을 모아서 잘 헤쳐나가야지요.” 딱히 할 말도 없었던 데다 사실 그 당시의 어려움이야 5공 정권이 초래한 어려움이었으니 정 회장으로서는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더구나 이미 취한 사람을 상대로 무슨 조리있는 대화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 회장은 일단 자리를 피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둘러대었다. 그러나 그는 정 회장에게 시비를 걸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좀체 놓아줄 기색이 아니었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 분명히 뭔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인데, 그게 대체 뭐요? 그리고 그런 어려움이 있다면 당신들도 뭔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 아니오? 어디 전경련 회장님 대답 좀 들어봅시다.” 말끝마다 시비조로 나오는 바람에 정 회장은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아예 서둘러 자리를 피하기로 작정하고 구실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만….” 그리고 정 회장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 때였다. “가긴 어딜가요!” 그가 돌아서는 정 회장의 바지 자락을 잡아 챈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 때문에 정 회장은 그만 땅바닥으로 고꾸라져 넘어지고 말았다. 정 회장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섰다. 그러잖아도 정 회장과 그의 대화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듣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칠순을 넘은 노인을 잡아챈 그에 대한 노여움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했다. 그러나 아무도 면전에서 그의 행동을 나무라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정 회장은 곧 일어났지만 삭이지 못하는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막상 나이와 상관 없이 정정한 정 회장의 체력으로 보아 그와 한번 육탄전을 벌여도 될 법 했지만 정 회장은 가쁜 숨을 쉬며 분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눈에는 주위 사람들의 표정도, 정 회장의 분노에 찬 얼굴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얘길 하고 있는데 가긴 어딜 가?” 정 회장은 침묵한 채 애를 써서 말을 삼켰다. 옷을 두어 번 툭툭 턴 정 회장은 아무런 말도 없이 뒤돌아서 대문을 향했다. 그는 정 회장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 더 이상 정 회장을 붙잡지 않았다. 그날부터 정 회장은 며칠 동안 집에서 꼼짝 않고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그날 밤 내내 화병으로 토사곽란을 한데다 갑자기 시력에도 문제가 생겨 시야가 어릿어릿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은 출근은 물론 그 다음날로 예정돼 있던 88올림픽 시설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두루 모이는 그 자리에 전경련 회장이자 대한체육회장 그리고 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인 그가 불참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정 회장은 눈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 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이때 정 회장이 겪어야 했던 ‘화병’은 어쩌면 일과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 회장 말년의 건강 문제는 정 회장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뒤 김영삼 정부로부터 국민당 해체 압력을 시작으로 장장 5년 동안 현대그룹 그리고 정 회장 개인의 운신까지도 엄청난 제재를 받아야 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속에 삭이고 살아야 했던 불 같은 성격의 정 회장을 생각하면 그의 건강이 이 시기에 급격히 눈에 띄게 쇠락해 갔던 것은 피할 수 없었던 귀결로 보인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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