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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자식이 아버지보다 먼저 늙어버린 과학적 이유

浮萍草 2014. 11. 20. 11:45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분석
    킵 손 박사가 필자에게 보낸 편지
    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를 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우리가 이해한 과학의 관점’,‘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과학의 관점’,‘인류의 정서적 관점’이 삼위일체가 돼 빚어낸 걸작이었다. 킵 손(Kip S. Thorne) 박사의 완벽한 자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돋보였다. 손 박사는 나에게 거의 스승과 같은 분이다. 텍사스 대학(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 유학하던 나는 1987년 초 거대한 블랙홀(black hole)에 대해 논문을 쓰다가 궁금한 부분을 그에게 편지를 보내 물었다.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한 답장이 그로부터 왔다. 그 편지 덕분에 나는 방정식들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그 해 연말 학위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홍보영상 속의 킵 손 박사.

    유학을 마치고 한국천문연구원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국외출장 때 캘리포니아 공대(Calo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교수이던 손 박사를 자주 찾아뵈었다. 이 대학은 미국 LA 근처 패서디나(Pasadena)에 있고 현재 미국 드라마 ‘빅뱅 이론(Big Bang Theory)’의 배경이 되고 있다. 패서디나에는 미국 NASA의 핵심 연구시설 제트 추진 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도 있다. 영화 속 NASA의 비밀 연구소 분위기는 캘리포니아 공대와 제트 추진 연구소를 합쳐놓은 것이었다. 영화 홍보영상을 보니 칠판의 수식들은 손 박사가 직접 적은 것들이었다.
    유명한 교과서 미스너, 손, 휠러의 '중력'

    영화 ‘인터스텔라’의 특수효과에 관한 것이라든가 기타 일반적인 논평은 얼마든지 찾아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에서는 조금 더 전문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분석하기로 한다. 1. 우리가 이해한 과학의 관점
    ‘인터스텔라’에는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녹아들어가 있다. 이는 물론 손 박사의 자문 때문이다. 손 박사는 1973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대성이론 교과서 ‘중력(Gravitation)’을 미스너(Misner), 휠러(Wheeler)와 함께 저술한다.
    교과서 '중력'에 나오는 웜홀
    거의 40년 전 책이지만 아직도 이만한 교과서가 없다. 책의 크기가 전화번호부와 같아서 보다가 졸리면 베고 자기 안성맞춤이다. 표면에는 어김없이 사과가 그려져 있다. 뉴턴(Newton) 이래 사과는 중력을 기술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내용은 이 책에 다 있다. 예를 들어 웜홀(worm hole)은 837쪽에 사진과 같이 잘 나온다. 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gravitational field equation)을 풀면 웜홀을 기술하는 수학적 답이 실제로 있는 것이다. 웜홀은 학술용어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고 한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 즉 블랙홀 주위 같은 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진행된다. 우리가 지폐를 7장씩 받는다고 하자. 같은 7장이지만 천 원짜리 7장은 만 원짜리 7장과 다르다. 원리가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관측자의 심장이 2초에 한 번씩 7번 박동하면 14초 걸린다. 중력이 약한 곳에서 이를 관측하면 시간의 길이가 달라 7번 박동하는데 70초가 걸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블랙홀로‘에스컬레이터’같은 것이 계속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자. 그 위에서 어떤 사람이 2초마다 사과를 하나씩 밖으로 던진다고 하자. 밖에서 사과를 받는 사람은 예를 들어 5초마다 사과를 하나씩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처럼 안쪽에서 1시간이 바깥쪽에서는 7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서 왜 빛조차 탈출하지 못할까?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광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광속으로 걷는 사람이 그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광속보다 작은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우리가 이해 못한 과학의 관점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 물리학(quantum physics)으로 나뉘는데 이 두 분야는 아직 융합되지 못했다. 즉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은 양자 중력(quantum gravity)을 기술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 두 분야를 융합하는 이론을 통일장 이론(unified theory)라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여생을 통일장 이론 연구로 보냈고 호킹(Hawking)도 현재 여기에 매진하고 있다. 호킹은 손 박사와 블랙홀에 관련된 내기를 걸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내기를 건 물건이 성인용 잡지였기 때문이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 물리학은 빅뱅(Big Bang) 직후 0.00…(0이 모두 43개)…001초가 지나는 동안 통일됐었다. 이 짧고도 짧은 시간을 우리는 플랑크(Planck) 시간이라고 한다. 빅뱅 이후 두 이론이 통일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아무도 모르는’ 블랙홀 속밖에 없다. 블랙홀의 중앙에는 어떤 물리학도 적용되지 않는 특이점(singularity)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주인공 쿠퍼(Cooper)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블랙홀로 뛰어 든다. 사랑하는 브랜드(Brand)가 타고 있는 부분은 밖에 남겨두고…. 참고로 블랙홀에는 회전하지 않는 슈바르츠실트(Schwarzschild) 블랙홀과 회전하는 커(Kerr) 블랙홀이 있다. 커 블랙홀로 뛰어 들어가야만 살아 돌아올 확률이 있다. 왜냐하면 특이점이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경우는 하나의 점이지만 커 블랙홀 경우는 고리(loop)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리를 통과해야 기적이 가능하다.
    영화에서 회전하는 블랙홀 주위를 통과하는 모습

    여기서부터는 누구도 과학적으로 시비를 걸 수가 없다. 우리가 아직 이해 못한 과학이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블랙홀을 통과한 쿠퍼의 눈앞에는 시공간이 뒤죽박죽 엉킨 5차원 큐브(cube)가 펼쳐진다. 또한 같이 들어간 로봇 타스(Tars)는 그 안에서 귀중한 과학적 정보, 양자 중력의 결과를 알아낸다. 그 내용은 아마 현재의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반중력(antigravity)에 관한 것일 게다. 그래야 ‘플랜 A’대로 우주 스테이션을 공중으로 띄워 올릴 수 있으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내 추측이다. 쿠퍼는 물리학자가 된 딸에게 모르스(Morse) 부호를 이용해 그 정보를 전달한다. 그 정보를 받은 딸 쿠퍼는 양자 중력 방정식을 풀게 된다. 언뜻 지나간 화면의 칠판에는 양자 중력을 기술할 때 나오는

    방정식이 눈에 띄었다. 물론 손 박사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그리하여 딸 쿠퍼는 ‘유레카(Eureka)’를 외칠 수 있게 된다! 3. 인류의 정서적 관점
    이 부분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 손 박사도 이 부분은 별로 관여를 안 했을 것이다. 초점은 영화에 나오는 ‘그들(they)’이 누구냐 하는 점이다. 누가 그렇게 친절하게 계속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을까? 5차원 우주를 이해하는 외계인들이 인류를 도와준 것이었을까? 더욱 발전한 과학을 소유한 우리 후손들은 아닐까? 주인공 쿠퍼는 그들이 바로‘우리(we)’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좁게는 자기 가족을, 넓게는 인류를 살리겠다는 집념이‘우리’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선택은 관람객의 몫이라고 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인류는 앞으로 어떤 우주적 시련이 닥쳐도 이겨낼 것 같다는 믿음도 생겼다.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역할이었던 맨(Mann) 박사가 한 말,‘너도 네 가족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아니냐’조차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딸들에게 아비로서 잘해주지 못한 나를 잠시나마 반성하게 됐다. 특히 이 점에서 놀란(Nolan)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사족 하나, 정말로 궁금하다. 영화에서처럼 자기보다 먼저 늙어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Premium Chosun ☜       박석재 한국 천문연구원 연구위원 dr_blackh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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