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커플링 법칙

한국적 권위주의 온상인 음양적 조직 원리

浮萍草 2014. 11. 11. 19:00
    <몸속의 생태학을 모르고서는 스스로의 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다. 여기 당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뇌가 연동되어 빚어내는 다채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간 행동학의 세세한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보라. 그러면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 본성은 어디서 오는가? - 마음의 기원

    권위주의 온상인 음양적 조직 원리 글을 더 계속하기 전에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한 번 더 상기시켜 드리고자 한다. 성리학은 삼위일체의 구조다. 첫째는 동양적 우주관이 어떻게 정치사회의 제도,특히 신분에 영향을 미치느냐의 문제다. 둘째는, 하늘이 정해준 신분의 테두리에서 생기는 도덕관의 문제다. 이것은 인간들의 심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셋째는 동양적 우주관이 배태하고 있는 제도와 성리학적 심리의 형성에 더하여 이것을 낳게 한 음양오행 사상이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것은 동양의학의 영역이다. 음양오행이 어떻게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생리학적으로 영향을 미치느냐의 문제다. 동양우주관이 갖는 이상의 세 가지 영역에서 우리는 지금 첫째와 둘째의 영역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 각각의 영역이 우리의 일상적 현실과 정신적 현실과 역사적 현실에서 때로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또 때로는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하고 있다. 음양오행 자체를 나중에는 하나의 과학적 체계로써 분석해서 보여줄 예정이지만 음양오행은 케케묵은 사상이 아니다. 그 자체가 우주원리의 한 부분으로써 과학적 의미를 가지고 작동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의미를 떠나 형이상학적 의미에서도 그것은 우리 역사의 제도와 인륜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유교의 파생적 효과는 오늘의 우리의 현실과 한국인들의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유교에서 비롯된 파생적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오늘의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는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앞으로 여러 회에 걸쳐서 일종의 한국인들의 정신적 유산의 원류를 되돌아보는 이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이것은 우리가 맞이하는 정신적 전환점의 시점에서 매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셋째는 마지막으로 다룰 예정이다. 따라서 음양오행이 갖는 인문사회학적 의미와 의학적 의미의 대비가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그런데 다시 반문해볼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왜 동양적 우주관인가 하는 문제다. 이미 앞서 회에서 인간의 마음이나 심리적 동기는 두뇌보다는 오장육부에 그 시작의 근원이 있다는 것을 말해온 바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동양적 음양오행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의 파생분야인 첫째의 제도와 신분,둘째의 도덕관의 문제와 셋째의 동양의학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논리적 계속성과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의 관계를 다루면서 동양적 우주관으로 넘어온 논리적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새기면서 독자들은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음양관계에서 파생된 사람 사이의 윤리관계는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위계질서,즉 인간사회의 위아래 관계를 규정해주는 중요한 끈으로도 작용하였다. 음양의 질서가 인간사회의 질서로 곧바로 전이되는 그 과정은 하나의 비유지만 그러나 그 지배법칙은 성리학의 변함없는 철학적 기저가 되어왔다. “인의(仁義)와 제도의 법칙은 모두 하늘에서 취했다.”는 동중서의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의 법칙이 수백, 수천년을 거치면서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서 인간 하나하나의 양심을 지배하는 원칙으로서 인간 사이에서 취해야 할 도덕률로 작동할 수 있게 정착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법칙이 곧 인간사회의 도리를 규정하는 법칙으로서 매일 매일 작용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놀랍다는 말이다. 하나의 사물에는 반드시 또 다른 하나의 사물이 그것과 짝을 이룬다는 음양적 대전제 그리고 하나의 사물이 주도적인 주인이고 그것과 짝을 이루는 사물은 종속적 이라는 이 관계 도식은 유교 사회 전체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묶어주는 하나의 조직 원리로 그 위세를 떨쳤다. 그게 바로 삼강오륜이며 이것은 서양 기독교의 십계명보다도 동양사회의 인륜관으로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욕인 패륜아니 후레자식이니 역적 같은 단어들은 다 삼강오륜을 벗어났을 때 쓰이는 사회적 누명이었다. 동중서의 다음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양은 주이고 음은 종이며 임금은 주이고 신하는 종이며 아버지는 주이고 아들은 종이며,남편은 주이고 아내는 종이다. 이 주종(主從)의 관계는 서로 전화(轉化)할 수 없는 것이고 영원히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중국철학사 하. p.39) 이 이론을 사회 윤리 사상에 응용하여,임금은 영원히 신하를 통치하고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을 통치하며 남편은 영원히 아내를 통치하는 것이 도(道)라고 단언했다. “하늘이 변하지 않듯이 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풍류란, p.39>는 것이다.” 이런 음양의 관점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바치는 충(忠)은 시작되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받치는 정절(貞節)도 바로 이 음양의 이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왜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의 관계뿐이겠는가? 아버지와 자식,형과 아우,선배와 후배,직장의 상사와 부하,군대의 선임과 후임,사회의 모든 인륜 관계는 바로 이 음양의 법칙에서 비롯되었고 이 법칙은 바로 인간사회의 위계질서를 묶는 대전제가 되어왔다. 임금 한 사람한테 충성을 받치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충신들을 한국에서는 제일로 쳐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는 역사의 인물로 정몽주를 빼놓을 수 있을까? 그의 ‘단심가’를 외지 못하는 학생들은 없을 정도다. 그의 단심가는 오직 임금 한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노래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전래하면서 조선조에서 유교가 국교로 자리 잡을 때까지 시기적으로 경계에 있던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는 조선조 500년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국민의 정신적 사표로 남았던 인물이다. 그가 정신적 사표가 되었던 그 이면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거기에는 왕과 신하의 관계를 규정한 윤리규범이 그 기저에 있었고 그리고 그 기저를 규제하는 규범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음양론에서 배태된 유학의 철학적 종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도 사육신의 존재가 국민에게 일종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리학에서 규정하는 인간관계는 특히 상하관계다. 풍유란은 삼강오륜도 상하관계의 정해진 틀을 하나하나 정해주는 벼리(綱)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벼리란 그물의 위쪽 코를 꿰놓은 줄이다. 그 줄을 쥔 사람이 모든 인간관계의 씨줄과 날줄을 쥐락펴락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다. 삼강오륜의 삼강(三綱)은 바로 왕과 신하, 남편과 아내,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벼리로 묶어놓은 것이다. 이 관계는 상하관계요, 주종관계일 수밖에 없다. 풍유란은 동중서의 말을 인용하여 “군신, 부부, 부자의 도리는 모두 음양의 도에서 취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는 이런 벼리의식이 사회의 크고 작은 모든 조직에 빠짐없이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정당에서 파벌싸움이 심해지고 그때마다 국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현상이 하나씩 나타나곤 한다. 다름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실력 있는 인물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면 꼼짝 못하고 파벌의 보스에게 굽실댄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파벌의 보스는 일본 스모선수가 왕좌의 자리에 올랐을 때 허리에 두르는 것과 같은 멍에의 줄을 차고 있기 때문이다. 소가 멍에에 씌우면 꼼짝 못하고 주인의 말을 듣듯이 정치의 멍에를 쓰게 된 정치인은 멍에 줄을 잡는 그 파벌 보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벼리와 멍에의 관계가 우리 사회의 윤리를 지배하는 대전제가 되어 있는 한 정치인들의 그 낯익은 행태도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대전제는 곧 한국사회의 조직사다리를 구성하는 권위주의의 근간이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근간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직장과 군대 그리고 가정 등 모든 조직사회의 병리와 병폐가 바로 이 비뚤어진 상하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하질서의 계서의식이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안정성을 받쳐왔고 또 인간관계의 대본을 이루어 왔다는 긍정적인 면 또한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이렇게 말했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임란 당시의 조선조를 지배했던 윤리규범으로 볼 때 이순신의 이 말을 임금이 들었으면 좋아했을 리가 없다. 백성을 위해서 나라가 안정되면 그것이 곧 임금의 덕이 되는 그 당시에도 장수의 충성은 백성이 아니라 곧바로 임금에게 향해졌어야지 장수와 백성 사이의 관계를 거친 한 줄 건너서의 임금에게 바쳐진 충성을 임금은 뜨악하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조가 바로 그런 임금이었다. 그는 암군(暗君)이나 혼주(昏主)는 아니었지만, 군신관계에 지나치리만큼 예민했던 왕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반면에 이순신은 임금과 신하 사이의 벼리 관계에 비교적 대범했던 듯하다. 그런데 이순신의“충은 민을 향해야 한다.”는 이 말이 아직도 21세기에 사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한 얘기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체 하나하나에서 아직도 그 구성원들이 느끼는 충의 방향이 전체 이익보다는 바로 자기 조직의 상사에게 향해져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부당한 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바로 그런 압박감의 반증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면 음양이 정한 인간관계야말로 한국적 권위주의의 온상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권위주의는 국민의 의식을 때로는 왜곡되게 반영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 개인의 창조성까지 좀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왜 더는 창조적 경제,창조적 정치,그리고 창조적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자조적 물음에 맞닥뜨리게 될 때 언제나 문제 되는 것이 바로 한국식 윤리관계가 파생시킨 문화적 규범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규범이 가장 예민하게 창조적 감수성을 발휘해야 할 한국 젊은이들의 행동반경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Premium Chosun        허경구 국제정치문제연구소 이사장 aronge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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