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황제나비 흉내내 살아남는 총독나비처럼… 곤충계에도 '호가호위'

浮萍草 2014. 11. 1. 10:16
    황제나비(위)와 총독나비. 분간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총독나비는 식민지
    에서 황제의 권력을 대행하는 총독처럼
    황제나비가 누리는 이점을 고스란히
    누린다.
    50여년 전 대학원 석사과정 시험일.영어,제2외국어 다음 전공 차례가 왔다. 손도 못 댔던 문제가 있다. 'mimicry(흉내)'.풀어 넘겼던 다른 문제는 이젠 기억조차 안 나는데 그 문제는 반백 년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다. 이렇듯 흉사(凶事)·낭패·좌절 따위의 궂은 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서로 다른 종이 유사한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을 의태(擬態·mimicry)라 한다. 모방·흉내·변장·가장(假裝) 따위로 설명되며, 순우리말로는 짓시늉이다. 짓시늉이란 동물이 다른 놈의 생김새·색깔·됨됨이 등을 본떠서 자신을 돌보고 먹잇감을 사냥하려고 주변과 비슷하게 꾸미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제가끔 딴 생물이나 무생물의 모양·색·소리·냄새 등을 가짜로 엇비슷하게 겉치레하여 상대를 속이는 은폐·위장· 보호색·경계색 등이 짓시늉이다. 학자들은 짓시늉을 다양하게 설명하지만 그중에 아무런 무기가 없는 파리의 일종인 꽃등에가 독침을 가진 꿀벌이나 말벌의 꾸밈새를 쏙 빼닮거나,독이 없는 총독나비(viceroy butterfly)가 독을 지닌 황제나비(monarch butterfly)와 어슷비슷 하게 흡사해지는 것을 본보기로 삼는다. 이를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라고 한다. 대를 이어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황제나비의 불가사의한 생태를 들여다보자. 황제나비는 다른 나비와 달리 더듬이 나침판으로 이동 방향을 측정하고 생체 시계로 시간을 재며, 지자기(地磁氣)로 위치를 파악하여 머나먼 길을 철새처럼 난다. 아메리카 대륙 말고도 뉴질랜드·호주 등지에도 비슷한 몇 종이 있다. 여름에 잠시 캐나다 남동부에서 설쳐대던 황제나비들은 구름 떼를 지어 가녀린 날개를 팔랑거리며 초봄에 조상들이 겨울 나기하고 떠났던 멕시코나 미국 남부로 되돌아간다. 왕복 약 8000~1만km 거리다. 그들은 무척 맛난 먹이 식물인 박주가리(milkweed)를 찾아 대를 이어 이주하는데 봄에 태어난 나비들이 단숨에 캐나다에 들렀다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여러 세대(世代)를 번갈아가면서 차례차례 옮겨가 비로소 한 바퀴 돈다. 박주가리 잎에 낳은 알은 4일 만에 깬다. 줄곧 허물 벗으며 자란 유충은 2주 뒤에 번데기가 된다. 잇따라 다음 2주 만에 날개돋이(우화·羽化)하여 성충이 되는 것이 한 세대다. 1세대는 2~3월,2세대는 3~4월,3세대는 5~6월,4세대는 7~8월에 태어나 곧장 북으로 바쁘게 이동한다. 9~10월에 태어난 대찬 5세대는 단명한 1~4세대와는 달리 악착같이 오래 살며, 추워지기 전에 초주검이 되어 월동지에 당도한다. 짓시늉 이야기로 돌아가자. 총독나비 유충은 새들에게 무해 무독한 버드나뭇과의 잎을 먹지만 황제나비 애벌레는 날짐승(새)의 심장에 해를 끼치는 독성분이 든 독풀 박주가리를 먹고 자란다. 그 독성은 성체 나비가 되어도 몸에 남아 있어서 황제나비를 먹어본 새들은 호되게 당한 탓에 절레절레 체머리 흔들며 먹기를 꺼린다. 그런데 독성분이 없는 버드나뭇과 식물을 먹은 총독나비도 새들이 멀찌감치 피하니 몸피는 좀 작지만 허울은 천생 황제나비를 본뜨기(의태)했기에 혼동하여 먹지 않는다. 영리하고 얄미운 그 생존 전략! 인간도 별수 없이 동물일진대 본새가 다른 동물과 하나 다르지 않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듯이 남의 권세를 꿔서 꺼드럭거리며 함부로 날뛰는 사람들, 표절 논문으로 학위를 따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 가짜 명품을 걸치고 으스대는 사람들…. 총독나비가 황제나비를 흉내 내 살아남듯, 인간사에도 숱한 짓시늉이 두루 숨겨져 있다.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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