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일보 DB |
"봄 도다리,가을 전어"라고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은 누가 뭐래도 전어<사진>다.
살이 통통히 오른 전어 몸집 군데군데에 엇비스듬히 칼질하고 통소금을 뿌려 석쇠에 구우면,노릇노릇 지글지글거리며 내뿜는 구수한 냄새에 깜빡 죽는다.
오죽하면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갔던 며느리 다시 돌아온다'거나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고 했겠는가.
전어만큼 철을 타는 물고기도 드물다.
전어는 가을에 기름이 두둑이 올라 가장 맛나지만 산란기인 여름엔 기름기가 빠져버려 '한여름 전어는 개돼지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선현들의 해학성이 자못 돋보이는 속담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의'전어지(佃漁志)'에"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하여 서울서 파는데 귀한 사람 천한 사람 할 것 없이 돈 걱정하지
않고 사 먹어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전어는 극동아시아 근해에만 사는 터줏고기로 청어과에 속한다.
몸길이 15∼31㎝로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조금 길며 등은 검푸르고 배는 은백색으로 반드러운 것이 때깔이 매우 곱다.
아래위 턱은 길이가 같으며, 방울같이 또렷한 눈은 지방질의 눈꺼풀로 덮인다.
갓 잡은 토실토실한 전어 비늘을 쓱쓱 벗기고 통째로 채 썰듯 송송 썰어 초간장을 끼얹어 한입 가득 넣어 꼭꼭 씹으면 고소한 맛이 기막히다.
또 전어사리(새끼 전어)나 어린전어로 젓갈을 담는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고 했지.
어쨌거나 천고마비의 계절엔 말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겨울 채비를 위해 잔뜩 살을 찌워야 하기에 입맛이 당기고 덩달아 '갈바람에 곡식들도 혀를 빼물고 자란다'고
한다.
영양소 중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각각 1g에 약 4㎉의 열을 내지만 지방은 얼추 9㎉를 발열하는데 이렇게 열량이 많은 지방을 몸통에 쟁여 넣기에 부피를 적게 차지하는
이점이 있다.
사실 사람의 복부 피하지방도 위기를 대비해 애써 미리 비축하는 것인데, 요샌 군살이라고 푸대접받는다.
다음 이야기가 이 글의 핵심이다.
전어를 비롯하여 고등어·상어 나부랭이의 해산 어류,갈매기·펭귄 같은 바닷새,거북이 따위의 파충류,포유류인 고래·돌고래 등등 바다 동물들은 하나같이 등 편은
검푸르고 아랫배는 희뿌옇게 꾸몄다. 왜 그럴까?
빛이 세면 그림자도 짙은 법 그런데 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흐린 등짝과 어둔 바다색이 뒤섞여 흡사해지고 또 아래서 올려다보면 뱃바닥의 흰색과 하늘의 밝은
햇살이 서로 어울려 티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몸체가 드러난 윗부분은 거무스레한 어두운 색이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아래는 환하게 밝은 색이 되는 현상을 '방어피음(防禦被陰·countershading)'이라 하는데,
이는 그늘을 지워(被陰) 자기를 못 알아보게 막음(防禦)을 뜻하며 이를 처음 발표한 화가의 이름을 따 '세이어의 법칙(Thayer's law)'이라 한다.
방어피음은 일종의 위장이자 보호색으로, 매무새를 주변과 엇비슷하게 치장하여 상대를 혼란시킨다.
즉 포식자는 몰래 몸을 숨겼다가 덥석 한달음에 달려들어 먹잇감을 잡아채고 피식자는 어둠에 가려 잡아먹히지 않는다.
물론 등짝의 짙은 색은 자외선을 차단하는 노릇도 한다.
그렇구나. 전어의 산뜻한 배색에 그런 깊은 속셈이 들었다니 놀랍다.
아닌 게 아니라 자연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비롭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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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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