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落葉歸根(낙엽귀근)… 잎사귀는 뿌리서 생긴 것, 다시금 본디 자리로 돌아가는 법

浮萍草 2014. 11. 22. 11:13
    뉴시스
    북이 쌓인 가랑잎 더미를 자박자박 걷다가는 두 발로 바닥을 슬슬 끌며 부스럭부스럭 헤집고 나간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작은 일을 보고 앞으로 닥칠 큰일을 짐작한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득선득 스산한 바람이 불고 사람 마음까지 교교히 물들게 하는 가을빛이 만연한 만추다. 가을아 가지 마라. 하지만 벌써 입동이 지났으니 머잖아 겨울에게 자리를 넘겨주겠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 잎사귀는 뿌리에서 생긴 것이니 다시금 본디 자리로 돌아간다. 의연히 제자리에서 몫을 다하고 홀연히 흙으로 되돌아가는 갈잎의 모습이 마치 인연이 다해 이승을 떠나는 수행자를 닮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진 잎(枯葉·고엽)은 뿌리를 도와 얾을 막고, 또 곱게 썩어 어미 나무에 흙냄새 물씬 풍기는 기름진 거름이 되어준다. 저 고운 단풍도 쇠하면서 비바람이나 쌩쌩 불어젖히는 날에는 온통 우수수 낙엽 비를 뿌린다. 그리하여 잎을 떠나보낸 나무들이 휑하게 벌거벗은 모습을 본다. 그런데 만약 겨울나무가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한겨울 송곳 추위에 발치의 물은 얼어버려 줄기를 타고 오르지 못하는데 가지의 잎에서 수분이 증발한다면 나무는 말라 죽고 만다. 서둘러 겨울 채비를 하는 참으로 속 차고 똑똑한 그들에게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슬기를 배운다. 2~3년 잎을 달고 지내는 침엽수를 빼고 활엽수는 죄다 잎을 턴다. 그런데 예외로 바짝 마른 잎을 겨우내 어린줄기에 끌어안고 지내는 누추한 모습(?)을 더러 본다. 참나뭇과(科)에 속하는 밤나무·참나무 무리와 단풍나뭇과의 단풍나무 종류다. 그렇다. 넓적하게 쩍 벌어진 잎자루 끝자락으로 여린 겨울눈을 감싸 시림을 막아주다가 이듬해 봄 싹틀 무렵에 절로 떨군다. 형만 한 동생 없다 하지 않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여름에 그 싱그러웠던 잎사귀들이 어찌 늦가을이면 너푼너푼 떨어지는 것일까. 지구 인력은 가을에만 작용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지. 맞다. 겨울이 올 기미가 보이면 줄기와 잎자루 새에 떨켜(이층·離層)가 생겨나 슬쩍 건드리거나 산들바람이 불어도 잎이 맥없이 뚝 하고 꺾인다. 즉 식물 생장 호르몬인 옥신(auxin)이 힘을 미치던 때는 멀쩡했던 것이 기온이 내려가면서 옥신 농도가 팍 줄어듦으로 부랴부랴 떨켜가 생겨난 탓이다. 그런데 떨켜는 아무 데나 생기지 않는다. 도마뱀 꼬리가 잘릴 자리가 미리 정해졌듯이 나뭇잎 잎자루 아래 예정된 곳에서 난다. 싱싱한 잎을 따보면 안다. 떨켜는 여러 층의 특수 세포가 망가지면서 조직이 한결 연약해진 자리로, 물론 과일이나 꽃에도 있다. 뿔뿔이 때굴때굴 뒹구는 널따랗고 둥그런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이파리 하날 주워 시인의 마음으로 들여다본다. 사물·자연을 두루 자세히 살피고 싶으면 시인이 되라고들 한다. 두툼한 잎살(엽육·葉肉)과 핏줄 닮은 관다발인 잎맥으로 이뤄진 잎몸(엽신·葉身)이 있고 아래쪽에 길쭉한 잎자루가 붙었다. 그런데 잎자루 끝을 꼼꼼히 살펴보면 빠끔빠끔한 구멍들이 보인다. 그것이 뿌리에서 물을 옮겨 나른 물관과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이 지나간 체관의 자국이다. 드디어 잎을 버린 헐벗은 나무는 깊은 겨울잠에 빠지게 된다. 나무의 휴면이 진짜 동면이다. 늙으면 서럽다. 근데 오갈 데 없는 늙정이를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 노파(老婆)의 구두 밑창에 달라붙은 '젖은 낙엽'에 빗댄다지 아무렴 다시 오지 않을 세기(世紀)의 이 가을을 마냥 즐길 것이다.
    Premium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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