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꼬리 끊는 도마뱀·내장 쏟는 해삼… 大我 위한 小我의 희생

浮萍草 2014. 9. 20. 10:34
    디어 금어기가 끝나고 바야흐로 꽃게 철을 맞았다. 
    알배기 꽃게는 내년 춘삼월이 제철이지만 지금은 수게 철로 보들보들한 뽀얀 살이 차지고 푸짐하다. 
    신혼에 처음 맞는 세한(歲寒)이었을 것이다. 
    넉살 좋게 "여보,시장에 꽃게가 많이 났던데,암게 좀 사다 삶아먹자"고 했다. 
    그때만 해도 집사람이 게걸음질 않고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었기에 망정이지 요새 같으면 본전도 못 건진다.
    꾸물대는 산 꽃게(blue crab) 몇 마리를 사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죄다 수컷이다. 
    모름지기 아는 것이 힘! 도감을 가져와 일일이 설명을 한다. 
    다리는 10개고 등딱지 양편 위쪽 가장자리에 예리한 9개의 돌기(marginal teeth)가 있는데 마지막 것이 가장 길고 뾰족하며 암컷(♀)은 등딱지(갑각·甲殼) 아래에 
    찰싹 달라붙은 배딱지가 알이 달라붙도록 둥글넓적한데 수놈(♂) 것은 본때 없이 좁다랗고 갸름하다….
    부엌에서 이내 과학을 만난다. 
    요리(음식)는 예술이요 과학이니까. 
    그날도 아내가 게장을 담글 거라고 꽃게를 사와서 쇠 솔로 거칠게 싹싹 문질러 씻은 다음 널찍한 도마에 올려놓고 게 발톱 하나를 탁 내리쳤다. 
    저런 생뚱맞게도 칼이 닿지 않은 성한 다리들도 둘째 마디(기절·基節)와 셋째 마디(좌절·坐節) 사이 관절이 죄다 와르르 좌르르 툭툭 잘라지는 게 아닌가. 
    맙소사. 정말이지 순간 괴기(怪奇)함에 진저리쳤고, 망연자실하였다.

    그렇다. 포식자(천적)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다 싶으면 서슴없이 명운을 걸고 멀쩡한 꼬리나 다리를 스스로 끊기(자절·自切·Autotomy)를 하니 본능적인 자해행위 (自害行爲)로 일종의 생존 수단인 것. 이렇게 대아(大我)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지만 그 자리엔 금세 거뜬히 새살이 돋으니 재생(再生·Regeneration)이다. 예를 몇 가지 더 보자. 바닷가 횟집에 가더라도 함지박 속의 해삼(海蔘)을 만지지 말 것이다. 자극을 받은 해삼은 내장 일부(호흡수, 맹장 등)를 왕창 항문으로 쏟아버린다. 속 다 빼주고도 살아남는다니 모질고 끈질기다. 또 산골짝 계류(溪流)나 실개천에서 가재를 잡다 보면 종종 집게다리 하나가 작은 놈이 있다. 저놈 다리 떼 주고 술 사 먹었다고 놀리는데, 힘센 놈에게 된통 걸려 다리 잘라주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놨던 것이다. 그리고 도마뱀<사진>은 포식자에게 잡히거나 물리면 잽싸게 꼬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어 일부를 떨고 도망치니 척수반사에 의한 일종의 도피반사이다. 이것은 꼬리뼈 몇 군데에 미리 형성된 특정한 탈리절(脫離節)의 탈골이며 동시에 꼬리 괄약근을 수축하여 탈골 자리의 동맥을 꽉 눌러 출혈을 최대한 줄인다. 한데 그냥 몸통을 잡고만 있어도 꼬리 중간에 피가 밴다. 팔딱팔딱 뛰거나 꿈틀거리는 꼬리를 본 목숨앗이가 놀라 무르춤하거나 정신이 팔려 허둥대는 사이에"옜다 그거나 먹어라"하고 허겁지겁 내뺀다. 하지만 어쩌랴. 몽땅 통째로 먹히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비단 앞서 이야기한 게·해삼·가재·도마뱀 말고도 민달팽이·문어·거미불가사리·메뚜기·거미 등등 200여종의 무척추동물들이 이런 생존 전술을 쓴다. 사람 몸에서도 매일매일 꼬박 500억~700억 개의 세포가 죽고 더불어 태어나서 정상 세포를 새롭게 나게 하거나 이상 세포를 없애는 이런'세포 자살(Apoptosis)' 도 크게 보아 자절로 친다. 하여 여러 동물들의 자절과 재생 원리를 의학에 응용하겠다고 학자들은 밤낮없이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한다.
    Premium Chosun ☜       권오길 | 강원대 명예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