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바람에 살랑살랑 '살살이꽃(코스모스의 우리말)' … 그럴싸한 꽃을 피워 벌·나비를 꼬드긴다네

浮萍草 2014. 10. 25. 10:49
    김지호 기자
    한때 즐겨 따라 불렀던 김상희씨의'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이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그 고왔던 가수 목소리가 막 들려오는 듯하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코스모스(cosmos)는 외래종(귀화식물)으로 국화과(科)의 한해살이풀이며 여러 변종이 있다. 국화과 식물은 쌍떡잎식물 가운데 가장 진화한 식물로 전 세계에 2만여 종이 한국에는 가을꽃인 국화·해바라기· 돼지감자(뚱딴지)·도깨비바늘·취나물·엉겅퀴·민들레·쑥부쟁이 등 390여 종이 자생하며, 난초과 다음으로 종(種)이 많다. 코스모스는 꽃대 꼭대기에 여러 꽃이 뭉쳐나는 머리꽃(두상화·頭狀花)이다. 6~10월에 피고, 올망졸망 줄기 끝에 1개씩 달린다. 분홍색·흰색·붉은색 꽃이 주를 이루지만 드물게 돌연변이종인 노랑 코스모스도 있다. 또 머리를 계속해서 가볍게 흔드는 모습을 살살거린다 하는데 코스모스의 우리말이 '살살이꽃'인 까닭은 꽃이 바람에 한들한들 살랑(살살)거린다는 뜻일 터다. 꽃말은 순정(純情)이다. 살살이꽃은 꽃잎이 몇 장일까? 쌍떡잎식물은 꽃잎이 4와 5의 배수이고 외떡잎식물은 3의 배수인데 살살이꽃은 머리 바깥 언저리에 혓바닥 닮은 혀꽃(설상화·舌狀花) 8장과 그 안에 촘촘히 박힌 노란 대롱꽃(관상화·管狀花)으로 돼 있다. 그리고 혀꽃은 머리 가장자리에 빙 둘러 난 것으로 꽃잎 끝이 톱니 모양으로 얕게 갈라지고, 눈부시고 예쁘장 하지만 외려 씨를 맺지 못하는 불임성(不稔性)으로 중성화(中性花) 또는 무성화(無性花)라고도 부르는 '헛꽃' 이다. 또한 가운데 한가득 도사리고 있는 대롱꽃은 영 꼴같잖고 볼품없는 자잘한 꽃이지만 이들은 암술 수술이 있어 씨를 맺는 양성화(兩性花)로 '참꽃'이다. 고운 꽃은 불임이지만 임성(稔性)의 밉살스러운 것들이 종자를 맺는다! 종족 보존의 비원(悲願)이라니! 꽃은 이울어도 열매는 남는다. 영근 코스모스 열매 한 송이에 달린 종자를 일부러 일일이 헤아려 봤더니만 평균 마흔 남짓 들었더라.
    이 씨알 하나를 심으면 과연 씨 몇 톨이 또 맺힐까. "사과 한 알 속에 든 씨는 바보도 셀 수 있지만 씨앗 속에 든 사과는 신(神)만이 헤아릴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씨도 맺지 못하는 머저리 혀꽃이 커다랗고 화려한 까닭은? 속속들이 보면 국화나 해바라기와 영락없이 똑 닮은 살살이꽃의 대롱꽃은 작고 됨됨이가 자질구레하고 볼품이 없어서 봉접(蜂蝶·벌과 나비)들이 긴가민가해 얼씬거리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다. 그래서 그럴싸한 꽃을 피워 그들을 꼬드겨 불러들일 요량이다. 늙으면 친구보다 추억이 더 좋다고 하던가. 학교가 끝나자마자 철딱서니 없는 또래 몇이 학교 뜰의 어린 살살이꽃 꽃망울을 한가득 따 호주머니에 넣고 하굣길에 든다. 진주(晉州)의 큰 거리 왼쪽은 진주고등학교 학생들이 오른쪽은 여고생들이 쭉 줄지어 갔는데 우리는 엇질러 오른편 길로 새치기한다. 두 가랑이로 갈라땋은 돼지 꼬리 닮은 갈래머리 사이에다 망울을 꼭 꼭 눌러 물총을 싼다. 그럴라치면 고개를 홱 뒤로 젖히고 가자미눈을 한 여학생들이 "문디 자슥들 지랄한다"고 욕질한다. 그 욕설이 어찌 그리도 애교스럽고 흐뭇했던지…. 이제 그녀들도 칠십 중반을 넘어 팔십 줄에 접어들었겠지. 아, 세월도 무상하여라.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고 하던데….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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