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 때… 아시나요? '죽음의 구멍'으로 꿴다는 사실

浮萍草 2014. 9. 6. 10:02
    난 여름에도 참 많은 사람이 바다를 찾았다. "바닷가를 거닌 시간은 인생 나이에서 빼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렴 해불양수(海不讓水)라 바다는 어떠한 강물도 마다치 않고 받아들인다. 암튼 탁 트인 바다는 사람을 남자답게 만든다고 한다. 드디어 바닷가 모래사장에 다다랐다.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랄~~."
    여러분도 여름밤 바다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를 많이 불렀을 터. 그런데 매끈한 조가비를 어떻게 무엇으로 동여매어 연인의 목에 걸어준단 말인가? 누구나 바다에 가면 '바닷가의 길손'되어 모래사장을 어슬렁거리면서 아스라이 굽어 보이는 수평선을 쳐다보다가도 절로 고개 숙여 발밑을 내려다보게 된다. 거기에는 쪽빛 파도에 밀려온 빈 조가비들이 속 배를 드러내놓고 어지러이 널려 있다. 워낙 오랫동안 물에 씻기고 볕에 바랜 탓에 하나같이 껍데기가 새하얗다. 펄썩 주저앉아 눈을 바싹 들이대고 골똘히 살펴본다. 조개껍데기에 분명 일부러 파낸 듯 동그란 구멍들이 뚫려 있지 않은가.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라고, 마음을 가다듬고 봐야 한다. 조개껍데기 안팎 어느 편에서 구멍을 뚫었는지를 본다. 맞다. 바깥에서 널따랗게 뚫기 시작해 야금야금 안쪽으로 가면서 점점 좁아들다가 이내 뻥 뚫렸으니 이런 원뿔형 구멍을 카운터싱크(countersink)라 한다. 일부러 구멍을 낸 것이 틀림없으니 육식하는 바로 조개들의 천적(목숨앗이)인 구슬우렁이(moon shell)들이 한 짓이다. 구슬우렁이과(科)에는 우리나라에만도 큰구슬우렁이 갯우렁이 등 30여종이 조간대(밀물 때는 물에 잠기고 썰물 때면 지표가 드러나는 땅) 개펄에서부터 수백m 심해 까지 모래흙 바닥에 서식한다. 껍데기가 둥그스름하면서 딱딱하고 반들반들하며 딴 고둥들은 바다풀을 먹는데 유별나게 육식을 하는 이 우렁이(고둥)들은 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나 빈 고둥에 사는 집게를 잡아먹기도 하고 우렁이끼리 공격도 한다. 그리고 모래와 점액으로 만든 옷깃 꼴의 알 뭉치(sand collar)에 알을 낳는 것도 특징이다. 구슬우렁이 놈들이 꽉 닫힌 조개를 쉬이 열 수 없으니 주둥이에 든 끌 모양의 치설(齒舌)로 껍데기를 갉고 문질러 옆구리에 구멍을 낸다. 여기서 치설이란 모든 연체동물만이 갖는 특유한 기관으로 먹이를 핥거나 긁고 자르는 일종의 이빨이다. 요놈 봐라. 슬금슬금 조개 곁으로 다가간 우렁이는 두리넓적한 근육질의 발로 덥석 조개를 덮쳐 꽉 틀어쥐고 숨도 못 쉬게 꼬박 몇 날 며칠을 죄어든다. 우렁이는 패각(貝殼)이 염산(HCl)에 약한 것을 알기에 침샘의 그것을 잘금잘금 부어 몰랑몰랑해진 껍데기를 기계송곳(드릴) 같은 거친 치설로 싹싹 판다. 이윽고 패각에 죽음의 구멍이 나고 만다. 먹고 먹힘의 순간이다. 우렁이는 능청맞게 이죽거리며 독물을 조개 속에 내리쏟으니 나른해진 폐각근(閉殼筋)의 힘이 빠지면서 스르르 조개껍데기가 맥없이 열려 버린다. 의뭉스러운 우렁이는 단숨에 주둥이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보드라운 조갯살을 냠냠 검뜯는다. 이런 서러운 사연이 깃든 조개 목걸이를'그녀의 목에' 걸어준 것이다. 만경창파(萬頃蒼波) 아,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여!
    Premium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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