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31〉 티베트 ⑦

浮萍草 2014. 9. 2. 10:48
    탕카와 탱화
    베트 불교미술은 독특하다. 자비롭고 온화한 부처님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검은색 피부에 무기와 해골을 든 채 화염에 휩싸인 모습의 존상을 보고 놀라게 마련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어 분노존(忿怒尊)이라 불린다. 티베트 불교미술의 상징인 만다라를 보면 설계도와 같은 기하학적 구성으로 이루어졌고, 남녀 합체불과 같은 오묘한 작품은 낯설기 그지없다. 티베트에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현종(顯宗) 계열의 불상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밀교 특유의 불상이 나란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티베트불화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서구인들은 왜 이처럼 ‘기괴한 그림’들을 그려야만 했는지에 대해 분석했다. 유럽의 한 정신분석학자는 분노존을 역사상 가장 탁월한 ‘악마의 예술’이라 평하였다. 그림에 담긴 본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표현방식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임이 분명하다. 분노존이 종교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왜 이토록 험상궂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분노의 대상은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알아 차릴 수 있다.
    이들 존상을 들여다보노라면 사천왕이나 금강역사를 떠올리게 되듯이 분노존은 불교의 가르침을 해치는 삿된 존재를 물리치고 중생의 악한 성정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서구인은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토록 기이함이 필요했던 데 대해 혹독하고 두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거나 우주운행과 인간정신의 본질인 격렬한 힘을 상징하는 것이라 분석하였다. 남녀 합체불에 대한 평은 더 혹독하였다. 이를 성적 개방으로 해석하여 티베트불교를 타락한 종교로 보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라마 예쉬((1935~1984)는 모든 인간은 여성에너지와 남성에너지를 동시에 지닌 우주에너지의 집합체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하였다. 이원적 요소의 공존, 모든 상반되는 원리의 합일을 구체적으로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분노존ㆍ합체불ㆍ만다라 등의 티베트 불교미술은 인도 후기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6세기 이후 인도불교에 새로운 사조로 밀교가 생겨났고 11세에 이르러 이슬람의 침공으로 밀교고승들은 티베트로 망명하였다. 따라서 불교발생지 인도에서는 희미해진 밀교계통의 미술이 티베트에 온전히 이어졌고, 토착종교인 본교와 결합해 독특한 불교미술을 형성해온 것이다. 특히 티베트 불화를 대표하는 유형으로 탕카(Thanka)를 꼽는다. 탕카는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서 필요할 때 벽에 걸어 사용하는 걸개그림이다.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녀야했던 그들이기에 가는 곳마다 간편하게 모시고 다닐 수 있는 두루마리 그림을 창안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탱화(幀畵)나 족자의 표구형태 또한 탕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그 이유로 중국ㆍ한국ㆍ일본에 성행한 두루마리 그림이 티베트불교를 수용한 원나라의 영향권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정(幀)’이라 쓰고 ‘탱’이라 발음하는 ‘탱화’가 ‘탕카’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 등을 꼽는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으니 중국에 족자그림이 언제 생겼는지를 따져보면 좋을 것이다. 기원을 떠나 탕카와 탱화는 그 속에 담긴 표현양식과 내용이 뚜렷이 달라 서로 다른 꽃을 피워왔음은 분명하다.
    ☞ 불교신문 Vol 3037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