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29〉 티베트 ⑤

浮萍草 2014. 8. 25. 10:32
    <이타행의 대승불교
    베트사람들은 사귀의(四歸依)를 한다. 
    기도를 할 때면 “라마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불법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불ㆍ법ㆍ승에 앞서 라마에게 먼저 귀의하기 때문에 라마를 삼보보다 높은 위치에 두는 것이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마 없이 어떻게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가?"
    이 짤막한 말 속에 라마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담겨있다. 
    그들에게 라마는 곧 인간의 몸으로 구현된 삼보요,부처님과 중생을 이어주는 존재이다. 
    부처님은 눈앞에서 볼 수 없지만 라마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전해 받을 수 있으니 티베트사람들에게 라마는 인간의 몸을 빌린 석가모니와 다름없다. 
    라마(lama)는‘영적 스승’이자 ‘최상’의 뜻을 지니고 있어 현실의 존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스승인 셈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티베트불교를 라마교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티베트에는 라마교라는 말이 없다. 
    이 말을 쓰는 속뜻은 티베트불교의 특성을 담으려는 데 있지 않고 정통불교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불교가 각 나라의 토양에 적응하여 독특한 문화를 지니게 되었다 하더라도 중국불교ㆍ선불교 등이라 부를 뿐 제3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리와 수행체계를 살펴보면, 라마교란 티베트불교를 비하하는 말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티베트불교만큼 지적이고 정통적인 불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들 한다. 
    수행의 목적을, 홀로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데 두지 않고 이타행의 보살도에 두는 대승불교 정신을 철저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토착신앙인 본(Bon)교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민중과 함께할 수 없었기에 밀교적 전통이 티베트불교의 특성으로 자리하고 있다.
    ‘딴따라’란 말이 밀교를 뜻하는 ‘탄트라’에서 왔다고 보듯이 탄트라를 닦는 학당에서는 온갖 악기를 동원한 의식이 요란하고 웅장하게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밀교는 고도의 수행체계를 거친 다음에 닦을 수 있는 단계이다.
    누군가 티베트스님들은 한국의 고3보다 더 강도 높게 공부한다고 말했듯이 13~15년간 현교(顯敎)를 수행하여 확고한 바탕을 다진 다음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밀교
    이다. 
    모든 공부단계 또한 세세히 나누어 시험을 거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따라서 티베트스님들의 학습방법은 독특하기로 이름 높다. 
    그들은 앉거나 서서 박수를 치고 두 팔을 펼치며 뛰거나 발을 구르며 온몸으로 열띤 논강을 펼친다. 
    날카롭고 난처한 질문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금방 답을 못하면 여지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버린다. 
    다시 질문자와 시험자의 역할을 바꾸어가면서 때로 모욕적 방식으로 질문해도 흔들림 없이 이에 답해야 한다.
    지식뿐만 아니라 자기통제능력까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또 스승을 고를 때는 스파이가 몇 년을 두고 사람을 관찰하듯 유심히 살피라고 가르친다. 
    가르치는 바가 실생활과 일치하는지 그 가르침이 불교경전에 의거하는지 그 분의 실제 수행과 명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 확신이 들 때까지 살피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일단 스승으로 정해지면 부처님 말씀처럼 그를 받들고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라마 없이 어떻게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가?”
    
    ☞ 불교신문 Vol 3033 ☜       구미래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