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28〉 티베트 ④

浮萍草 2014. 8. 12. 18:32
    “금생의 선행 내생의 공덕”…자비의 생활화
    베트사람들의 주식은 고기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식물한계선인 해발 4000m 이상의 척박한 고원지대로 야채가 귀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말도 결국 공기 중의 산소가 희박하여 사람이 살아가기에 힘든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연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열악하여 개개인의 삶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육식을 주로 하는 가난한 유목민족’이라면 있을 수 없을 법한 일들이 티베트에선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펼쳐진다.
    라사의 거리든 광활한 초원이든,티베트에서는 어디서나 주인 없는 양과 개 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방생으로 자유의 몸을 얻은 동물들이다. 
    방생된 동물에겐 표지가 붙어있어 잡아가거나 죽이지 않을 뿐더러 누구든 만나면 먹이를 준다. 
    따라서 이들 동물은 육식이 주식인 가난한 나라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평생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아갈 수 있다.
    인도의 소나 이슬람의 돼지처럼 신성시하거나 금기시된 동물도 아니요, 
    단지 방생되었다는 표식만으로 평소 식육의 대상인 동물을 온 국민이 함께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존과 직결되기에 육식을 피할 수는 없지만 늙거나 허약한 가축을 선별적으로 도살하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나라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 심성이 몸과 마음에 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또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어렵게 번 돈을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보시하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을 미루지 않는다. 
    늘 1마오짜리 화폐를 지니고 다니면서 사원의 불상 앞에 놓고, 오체투지 하는 순례자에게 건네고, 또 걸인과 나눈다.
    보시는 부처님의 자비를 주고받는 것이라 여기기에 걸인에게 베풀 때도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 우리가 아는 적선과는 태도부터 다르다. 
    자신을 위해 잉여재물을 쌓아놓는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그들을 보면 티베트는 수행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불교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는 성금을 어디 쓰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티베트인들은 가난한 난민입니다. 
    하지만 굶주려 죽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배고픈 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 보내 굶주린 이들이 허기라도 면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최고지도자와 개개인 국민이 서로 지향하는 이상과 실천하는 행동이 같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티베트사람들의 생활화된 자비와 보시는 그들의 생사관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금생의 선행이 내생의 공덕이 된다’는 불교적 생사관은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으며‘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삶과 죽음의 인과관계는 누구나 아는 진리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생사관을 실현하는 순간 그것은 내세를 기약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인류애로 연결된다. 
    티베트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묻지 않을 것이다. 
    그 종은 자신을 위해서도 울리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함을 체득하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책임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불교공동체라 할 만하다.
    
    ☞ 불교신문 Vol 3031 ☜       동방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