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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정주영, "개방화 부작용으로 중국이 좌초할 수 있다"는 키신저 말에...

浮萍草 2014. 7. 11. 11:31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1975년 미국은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가 주도한 소위 핑퐁외교로 세계에 대하여 폐쇄되어있던 중국의 ‘죽의 장막’을 걷어내게 하여 개방을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미국은 여러 면에서 일종의‘자기 성공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도전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아시아에서의 그들의 입지가 그러하였다. 13억 인구와 아시아 전역에 걸친 광대한 국토 면적과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이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도대체 향후 세계무대에서 미국에 어떤 상대로 부상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이중에서도 지정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국과 가장 인접해있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것은 미국에게 하나의 속앓이에 가까운 고민거리였다. 왜냐하면 한국은 미국에게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혈맹’이고 그들이 이 지역에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정치, 외교,군사,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한창이던 1985년 7월,전경련의 초청 형식으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여기서‘초청 형식으로’라는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 키신저와 같은 비중의 인사가 방한할 때는 실제 방한 동기가 정부 또는 정치권 초청인 경우에도 형식상 초청기관은 전경련 같은 민간 기구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함으로서 특히 한·미 간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 사항이 있을 경우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국제 무대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비중이 원래 크기 때문에 그가 왜 어디서 누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는가에 대해선 항상 국내외 언론기관과 각국의 정보 수집 채널이 암암리에 촉각을 세우고 있기 마련이다. 그는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라는 컨설팅 회사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 몇 명의 보좌진,비서가 있을 뿐 모든 컨설팅 자원은 그의 머리,경륜,인맥에 있었고 그 수준과 가치는 방대한 전문가 연구 조직을 가지고 있는 컨설팅 회사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재계 거물들은 그와 만나는 기회를 가지려 했고 몇 십 분의 대담을 한 대가로 거금의 자문료를 건네는 일이 많았다. 키신저의 한국 방문은 이전에도 이미 수차례 있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시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상황을 파악 하고 한국 측에서는 그의 조언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또 당시 시장개방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한반도의 정세는 미국 정부와 키신저의 중요한 관심사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아직 한국이 정식으로 중국과 수교를 하지 않은 상태지만 모든 정황으로 보아 한·중 관계의 급속한 발전은 시간 문제이고 우선 경제 교류로 시작될 한·중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이러한 발전이 미국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하여 전전긍긍하고 있을 시기였다. 키신저의 방한은 정주영 회장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중국 시장의 개방은 한국에 있어서도 대단한 관심 대상이었지만 막상 변화의 실상과 전망이라든가 미국 등 강대국의 입장,한국 경제계의 바람직한 대응책이 무엇이고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가 등의 문제들을 가지고 고심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중국의 최고위층들과의 넓은 지면 그리고 중국과 관련한 그의 경륜을 기반으로 중국에 대한 특급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 방문이 중국으로 등소평을 만나러 가는 길임을 밝혔다. 따라서 정 회장과 전경련 중진 인사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의중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전경련 회장단 인사들과 롯데 호텔 별실에서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참석인원을 10명 내외로 한정할 것과 내용을 비공개로 하기로 했다. 통역은 필자가 맡았다. 키신저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마자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부터 표명했다. 외교적 수사를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정회장께서 한국 경제에 대해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한국에 관심을 쭉 가져왔지만 아무래도 경제에 대해서는 정 회장께 먼저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한국 경제는 발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키신저 박사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대로 여러 분야에서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정책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 구미 각국이 자국의 실업자 문제 국제수지 적자 등을 이유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추세로 간다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낮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장률을 낮춘다면 어느 정도까지…?” “한 6∼7%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6∼7%라구요? 놀랍군요. 미국이라면 6% 성장은 대단한 것인데 말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분명히 다르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는 이미 다 큰 어른이나 마찬가집니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이제 어린애나 마찬가집니다. 미국이 한 걸음 내디딜 때 우리는 열 걸음 이상을 쫓아 가야 겨우 뒤따라갈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1%와 미국의 1%는 분명히 다르죠.” 그러나 여기까지는 일종의 전주와 같은 대화었다. 키신저나 정 회장을 비롯한 한국 측 참석자의 진짜 관심은 중국에 관한 것이었다. 키신저는 한국의 경제계 지도자들이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했고 한국 경제계 중진 들은 앞으로 본격화 될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대해서 미국의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싶어했다. 또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실사구시의 기치를 내 걸고 있는 등소평을 만나러 가는 키선저로부터 중국 정부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시기는 한·중 수교 전이었고 중국을 방문하거나 중요인사들을 접촉할 경우 반드시 안기부의 통제를 받게 되어있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를 감지한 듯 키신저 박사는 자신의 본 영역이랄 수 있는 중국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 “정 회장께서는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주요 경쟁 또는 새로운 기회의 대상이 어떤 나라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콩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이 한국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싱가포르는 조금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만 역시 산업구조 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경공업을 앞세워 곧 세계의 전면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 만일 중국이 세계 무대에 진출한다면 우리로서는 상당히 벅찬 상대를 만나게 되겠지만 거기에는 기회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빨리 중국이 시장을 더 개방하고 세계 무대에 나섰으면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중국 시장에 기대하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경제 교류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충분치 못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 이전까지는 오랜 교역국가였습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자원 부존 면에서도 보완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히 인천에서 배를 띄우면 중국까지 한나절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이어서 키신저에게 정 회장이 물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사께서는 중국 시장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중국은 두 세력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두 세력이란 바로 전형적인 모택동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등소평을 지지하는 세력입니다.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모택동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전형적인 중국 사람이자 공산주의자입니다. 반면에 등소평은 아주 특이한 인물로서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소평식 현대화에 찬성하고는 있지만 이에 반발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의 미래는 아직도 불투명합니다.” “불투명하다면 중국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 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최근 등소평이 공식석상에서 누차 이야기했던 것이 아마 좋은 해답이 될 것 같군요. 등소평은 각종 연설에서 ‘현재 중국은 현대화라는 거대한 실험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그 결과가 좋다면 이 방식대로 계속 추진할 것이고 문제가 발생한다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등소평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새삼 꺼낸다는 것은 반발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되고 등소평이 그만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시사하는 것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키신저 박사가 보기에 두 세력간의 무게 추는 어디로 기울어질 것 같습니까?” “앞으로 3년간이 중국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과 같은 현대화 정책을 앞으로 3년 정도만 더 지속한다면 중국은 다시는 과거 체제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 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과거 ‘철밥통’ 체제로 돌아가는 데는 더 크고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죠. 따라서 이미 되돌아 갈 수 있는 회귀점을 지나갔다고 봅니다. 이번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때 가서 등소평을 비롯하여 호요방과 조자양 등 중국 지도층들을 만나보면 나의 이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중국 현대화와 관련하여 조자양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더 일한 만큼 더 잘 살 수 있다는 유인정책이 골자가 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랬더니 조자양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그렇다면 공산당이 아닌 사람들을 중국에 더 많이 들여놓겠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중국 사람들은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 3년만 더 현대화 정책이 지속된다면 중국 공산주의는 결국 하나의 관념으로서만 그 명맥을 유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경제만 시장 경제체제로 간다면 그 동안 공산주의 체제에 익숙했던 의식구조와 관행이라는 타성과 소득격차 확대에 의한 계층간의 불만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 불안이 야기되어 좌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 파장은 중국 자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파장이 엄청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계도 이런 점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키신저로서는 한국 경제계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것 같았다. “키신저 박사님 제 견해는 다릅니다.” 정 회장이 키신저의 말을 바로 받았다. “나는 미국 사람들이 중국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미국이 태동도 하기 수 천년 전부터 정치와 외교 특히 장사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경험과 수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과 반세기 정도 공산주의 체제 속에 살았다고 해서 이들 피 속에 뿌리 깊이 수천 년 내려 내려온 최고의 장사꾼 기질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과정에 다소 혼란과 차질은 겪게 되겠지만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 으로 부상할 것입니다.” 정 회장의 확신에 찬 단호한 표현에 키신저는 다소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동석한 경제계 중진들도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허허 하기는 그렇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개방 체제를 계속해도 문제가 있고 옛날 체제로 돌아가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면 문제가 덜한 쪽으로 가는 것이 중국의 선택이 되겠지요.” 역시 키신저다운 대답이었다. 1989년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겪기도 했다. 그 후 한·중간에는 1992년 수교가 이루어졌다. 1997년 홍콩 반환을 앞에 두고 세계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홍콩이 공산주의 중국 통치 하로 돌아가면 아시아 자유 무역 허브로서 홍콩의 역동성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라고 100년 홍콩 조차기간 동안 홍콩에 기반을 두고 번영을 구가했던 많은 서방세계 다국적 기업들이 짐을 쌌다. 부동산 가격은 급락했다. 오늘의 홍콩을 보면 공산주의이기에 앞서서‘장사꾼’중국사람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었었나를 알 수 있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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