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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벌은 행복한가(中)

浮萍草 2014. 7. 3. 09:47
    구속된 태광·CJ·동양그룹 회장들…
    바야흐로 막 오른 재벌 총수들의 수난 시대
    ▲ 태광 이호진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씨가 법정에 들어
    서고 있다.
    야흐로 재벌 총수들의 수난시대다. 국내 굴지의 재벌 총수 5명이 현재 구속되었거나 형집행정지 상태에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법정에 들락 거리는 총수도 몇 명이나 된다. 재벌 총수가 아니었으면 건강을 잃지 않고 감방 신세를 피해갔을 수도 있다. 재벌 총수의 구속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몇 년전만 해도 총수들에겐 집행유예라는‘특혜’가 있었다. 한 50일 정도 수형생활을 하면 그만이었다. 대부분 1심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풀려났다가 얼마 지나 사면 복권을 받는 일이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심지어 구치소에 며칠 있지도 않고 병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단어가 그래서 생겨 났다. 재벌 총수 집안 중 최대 수난은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된 태광그룹 이호진(52) 회장이다. 어머니인 이선애(86) 여사도 함께 구속돼 현재 교도소에 있다. 이선애 여사는 2012년 12월 회사돈 400억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975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돼 형을 살고 있다. 병보석으로 잠시 병원에 있거나 교도소에 재수감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아들인 이호진 회장은 간암 판정을 받아 지난 해 8월 수술을 받고 현재 형집행정지인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90을 바라보는 모친과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한 아들이 같이 영어의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모친 이선애 여사는 창업주인 이임용 회장과 함께 공장을 돌리고 직원들을 챙긴 여걸로 소문난 분 이었다. 태광산업은 한때 주식시장에서 주당 가격이 가장 비싼 ‘황제주’로 인정 받을 만큼 탄탄한 회사였다. 이호진 회장은 이러한 제조업 위주의 사업을 미디어 그룹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장 조카와의 불화와 임직원들 통솔 부재 등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폐쇄적인 경영과 하도급 업체에 대한 횡포 등으로 재계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모자가 구속되고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졌는데도 동정 여론이 일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 회장의 폐쇄적인 경영과도 관련이 있다고 업계에선 지적하고 있다.

    ▲ 휠체어를 타고 법정으로 향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CJ 이재현(54)회장은 어떤가. 횡령과 탈세 배임 혐의로 구속된 그는 희귀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병원과 구치소를 오가고 있다. 유전적 희귀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손발의 근육이 점점 약해져 심해지면 걷지를 못할 정도로 발전된다고 의료계에선 얘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하기도 했다. 신장이식은 약간만 소홀이 다뤄도 트러블이 발생 자칫하다가는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재벌 총수의 병명은 특 1급 비밀인데도 수형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오픈’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재현 회장은 재벌 2·3세 경영인 중 유일하게 유학을 하지 않은 ‘토종 경영인’이다. 삼성가의 장손 경영인으로서 한때 삼성 그룹 후계자 반열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필자가 1992년 삼성전자 전략 기획실 이사로 승진했을 때 단독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때 이 회장은 무척 신중했고,자기 관리에 철저했음을 내비쳤다. 제일제당을 삼성으로부터 물려받아 오늘의 CJ그룹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CJ그룹의 미디어 분야는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로 정평이 날 정도로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상태였다. 어쨌든 태광 이호진 회장이나 CJ 이재현 회장의 현 상태는 예전 재벌 총수들의 ‘칭병’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동양 현재현(65) 회장도 최근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동양 현 회장은 동양그룹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맏사위로 그룹을 물려받아 한 때 잘나가는 사위 총수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조부가 고려대 총장, 부친은 이화여대 교수을 지낸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자신 역시 서울법대 3학년 때 사법 시험에 패스한 수재였다. 현직 검사 시절인 1976년 이 회장의 장녀인 혜경씨와 백년 가약을 맺고 동양그룹 맏사위가 됐다. 결혼 이듬해 검사직을 사임하고 ‘황금의 제국’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하고 귀국,장인 밑에서 착실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장인이 타계하자 시멘트를 비롯한 모기업은 맏사위인 현 회장이 맡고 제과업은 둘째 사위가 맡는 것으로 지분 정리를 끝내고 각기 경영에 돌입했다. 그룹 회장이었지만 현 회장의 주식은 아내보다 적었다. 그래서 2005년 동양레저를 세워 지주회사로 만들고 자신이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때부터 주변에 처가쪽과의 불화설이 불거져 나왔다. 외환위기 이후 그룹 경영이 나빠지면서 무리하게 전환사채(CB)등을 발행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사기성 기업어음(CP)등을 발행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양 그룹은 한때 재계 10위권을 맴돌 정도로 시멘트·건설·금융 등 사세가 막강했었다. 현 회장은 재벌가와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도 검사로서도 인정 받고 상위 1%의 삶을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재벌가 딸과의 결혼으로 인생 말년에 망신살을 당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재벌들의 수난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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